한장군의 화려한 놀이판… 비밀이 스며 있었네
한장군의 화려한 놀이판… 비밀이 스며 있었네
  • 정민지
  • 승인 2016.09.04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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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북도 마을이야기 박람회-경산 서부2리
자인단오제의 핵심 ‘여원무’
한장군, 3m 꽃관 쓰고 춤판
누이와 함께 왜구 유인 격퇴
전설 믿는 주민들 참여·보존
러브스토리 입혀 각색 ‘호평’
마을이야기 박람회서 선보여
“전통 지키며 젊은층 공감하는 여원무로 변화”
(사)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 김봉석 이사장
 
삼정지1
경북 경산시 자인읍 서부2리는 ‘한장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서부2리를 중심으로 한장군을 테마로 한 경산자인단오제가 열리고 인근 계정숲과 삼정지(사진)에 한장군 묘와 한장군의 말무덤이 각각 위치해 있다.
거대한 꽃관이 도드리 장단에 맞춰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넘어질 듯 앞으로 쏟아지며 꽃과 하나된 듯 덧배기 춤을 추는 모습이 흡사 ‘꽃귀신’같다. 오색의 꽃관 주위에 수십명이 원진(圓陣)을 쳤다. 함박꽃이 겹겹이 쌓이면서 춤은 절정을 향했다.
 
여원무연습
서부2리 주민들은 매주 한차례 모여 지역 민속놀이인 ‘경산자인단오제’의 대표 공연인 여원무를 연습한다.
경북 경산시 자인면 서부2리 계정숲에서 매주 월요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 경산자인단오제의 여원무 연습이 펼쳐진다. 여원화와 불리는 3m 높이의 꽃관을 쓴 ‘한장군’을 중심으로 꽃다발과 소고를 든 주민들이 둘레를 돌며 춤을 추는 여원무(한장군 놀이)는 자인 단오제의 핵심이다. 한장군 역할의 젊은 남성을 제외하고 모든 역할은 마을 여성들이 맡고 있었다. 과거에는 지역 학생들이 주축이 됐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청소년들이 줄어들면서 50~60대 여성들이 발벗고 나섰다. 참가 주민 90% 이상이 낮에는 농사 짓고 저녁에는 연습을 해왔다. 모녀가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자인면의 중심지인 서부2리는 단오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을이다. 자인의 숨길인 ‘계정숲’이 있고 숲 내 (사)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 전수회관과 공연장이 마련돼 있다.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에 지역 대표축제인 경산자인단오제가 이 일대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자인단오제는 마을의 수호신 ‘한장군’과 관련이 깊다.

“한장군이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주민들에게는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한장군 덕분에 이 마을이 안녕하고 평화롭다는 믿음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뿌리 깊다.”

30년 가까이 ‘한장군’ 역할을 맡고 있는 경산자인단오제 보존회 김봉석 이사장의 말이다.

한장군(韓將軍)의 존재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라 또는 고려시대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은 모르지만 주민들은 실재 인물이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

‘자인현읍지(慈仁縣邑誌)’ 등에 따르면 여원무의 시작은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9세기 전후, 경산 도천산(到天山)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들이 백성들을 괴롭혔다. 한장군은 이를 해결할 방도를 궁리한 끝에 여장을 하고 춤을 춰 왜적을 유인하는 묘책을 세웠다. 도천산 밑 버들못 둑에서 한장군과 그의 누이는 꽃관을 쓰고 놀이판을 벌였다. 함박꽃으로 치장한 화려한 꽃관과 춤사위에 어느덧 구경꾼들이 몰려 들었다.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적들도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이때 아름다운 꽃춤의 주인공이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었다.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비수를 꺼내며 무사(武士)인 본 모습을 드러냈다. 장군은 미리 준비한 칡으로 만든 그물로 왜적들을 얽어 한꺼번에 소탕했다.

이후 한장군은 자인의 태수(신라시대 군의 으뜸벼슬)가 됐다. 한장군이 죽은 후 자인 주민들은 지역 곳곳에 사당을 짓고 단오날에 추모제를 모신 후 다채로운 민속놀이로 3~4일을 즐겼다 한다. 이것이 현재 전승되고 있는 경산자인단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자인단오제는 한장군 대제·여원무·자인팔광대·자인단오굿·호장 장군행렬 등 다섯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여원무는 획기적인 변화를 감행했다. 지난 1971년 ‘한장군 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첫 시도였다. ‘한장군과 누이’로 국한됐던 스토리에 가상의 인물을 추가한 춤극을 제작했다. 춤극 ‘여원무, 비밀의 문을 열다’는 여원무 원형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상상한 공연으로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와 함께 만들었다.

경산 자인의 옛 이름은 ‘여량(餘糧)’이다. ‘양식이 넉넉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춤극 여원무는 자인의 옛 이름을 딴 ‘여량’을 한장군의 연인으로 설정, 러브스토리를 가미한 이야기로 재탄생됐다. 왜적의 횡포에 시름하던 자인에 큰 불이 나고, 한장군의 연인 여량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에 자책감과 분노에 휩싸인 한장군은 남은 마을 사람들은 꼭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마을에 흐드러진 함박꽃을 이용해 왜적의 눈과 귀를 속이는 춤판을 벌인다는 줄거리다.

여원무가 가지는 역사성, 지역성, 독창성에 대중성을 덧입히는 시도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지난 5월 25일 제39회 경산자인단오제 사전행사로 영남대 천마아트센터에서 열린 춤극 여원무는 더 화려해진 춤과 의상, 아름다운 이야기로 호평을 받았다.

오는 10월 6일~8일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2016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박람회’에서 이번 춤극의 하이라이트를 맛볼 수 있다.

손분남(여·65) 여원무 회장은 “춤극 후반부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장면을 위해 주민들이 생업의 와중에도 틈틈이 연습했다”며 “마을의 전통을 지키는 일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여원무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민지·이종팔기자
사진=전영호기자

<(사)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 김봉석 이사장 인터뷰>
 

김봉석 이사장
(사)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 김봉석 이사장
30여년 간 여원무 한장군 역할을 맡았던 김봉석(53·사진) 씨는 지난해 (사)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를 대표하는 이사장이 됐다.

“1987년부터 한장군을 했다. 여원무 화관이 정말 무겁지만, 그걸 머리에 쓰고 춤을 출 때 보람은 말로 할 수 없다.”

종이로 만든 꽃관은 높이 3m에 무게가 족히 20㎏가 넘는다. 다부진 체격의 김 이사장은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여원무의 핵심역할인 ‘한장군’을 맡았다.

지난해 보존회 총회에서 12년만에 이사장이 바뀌면서 ‘젊은’ 장군은 ‘젊은’ 이사장이 됐다.

김 이사장은 취임 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추진, 하나둘 이뤄가고 있다. 지난해 제39회 단오제를 끝내고 결과 보고서를 만들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공연 후 결과보고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해왔던 터였다.

더 큰 변화는 지난 1969년 복원된 이래 수십년간 원형을 전승했던 여원무를 각색, 한장군과 가상인물의 러브스토리를 춤극으로 풀어낸 일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어르신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걱정과 우려가 많았지만 결과물을 보고 다들 만족해하셨다. 전통을 지키면서 젊은 층도 공감할만한 여원무로 만들었다.”

김 이사장은 내년에는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춤극 여원무에 전투신을 강화하는 등 또 다른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여원무, 자인단오제는 지역 주민이 직접 보존한다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를 기본으로 역동성을 추구할 예정이다. 단체의 발전을 위해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싶다.”

◇한장군의 흔적을 찾아서

경산 지역의 수호신, 한장군의 흔적은 서부2리 계정숲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경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된 계정숲은 구릉지의 천연군람림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자연 숲이다.

이곳에는 한장군 묘와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진충묘가 있다.

한장군 묘는 1968년 자인중·고등학교의 본관 신축 공사를 위해 땅을 파헤쳤을 때 두개골이 든 석실묘가 발견됐고, 이를 계정숲에 모시며 한장군 묘를 조성했다. 한장군과 누이의 사당은 경산 여러곳에 있지만 진충묘 외에는 모두 한장군 누이를 모시고 있다. 자인면 원당리 한당, 진량읍 마곡리 한묘, 용성면 육동 대종리 한당 등이 남아 있으며 용성면 송림리의 경우 옛날 바구나무 숲에 사당이 있었으나 일제시대 철거돼 지금은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이 외에도 계정숲에는 현감공덕비와 조선시대 자인현(慈仁縣)의 관청인 시중당도 옮겨져 있다.

계정숲에서 도로를 건너면 ‘삼정지(三政池)’가 펼쳐져 있다. 연꽃이 가득한 삼정지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한장군 말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1988년 준설작업 시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문 옹기병·기와·도질 토기·숯·부엌아궁이가 발굴됐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한장군 가장행렬이 삼정지를 들렀다고 한다.

한장군이 여원무를 췄다고 전해지는 자인면 교촌리 버들못에는 한 장군의 칼 흔적을 지닌 바윗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참왜석(斬倭石) 또는 검흔석(劍痕石)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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