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작품 거부”…젊은 예술인의 신선한 도발
“박제된 작품 거부”…젊은 예술인의 신선한 도발
  • 황인옥
  • 승인 2017.01.18 16: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커뮤니케이션 29일까지 백수연전
드로잉에 퍼포먼스 결합
영상설치 등 다매체 활용
삶·세상에 대한 탐구 표현
백수연전
백수연이 목탄가루와 몸을 활용해 드로잉하는 퍼포먼스를 펼쳐보이고 있다.
“드로잉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드로잉과 함께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순간 순간 필요한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그렇더라도 드로잉은 끝까지 붙잡고 가고 싶어요.”

작업실이 있는 제주에서 대구의 전시장에 막 도착한 백수연이 숨을 고르자 드로잉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B커뮤니케이션(대구 중구)이 기획한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의 첫 초대작가로 전시 중인 그녀의 작품들 역시 드로잉이 핵심이다.

전시에는 초기 드로잉부터 재료와 기법의 변화가 가미된 최근 드로잉까지, 그동안의 작업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여기에 김재경, 전동진 등의 작가와 그리고 텐거 뮤지션, 유진규 마이미스트 등의 협업도 더해졌다. 협업은 확장된 소통의 일환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누드 목탄 드로잉 ‘자화상’이다. 초기 드로잉의 전형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웅크리고 있는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본질적인 자아에 대한 작가적 질문의 시각적 표현이다.

“첫 전시가 목탄 누드 드로잉전이었어요. 주제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였죠. 탐구의 대상이 저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잃어버린 본질을 찾는데 목탄과 누드, 그리고 드로잉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이들은 모두 원형으로서의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죠.”

이번 전시에는 또 다른 드로잉 작품도 걸렸다. 작품은 목탄을 가루로 내고 밀가루풀, 해초풀을 섞어서 재료의 변화를 모색하고 손이나 몸을 붓 대신 사용하며 초기 드로잉의 확장을 꾀한다. 이 변화는 한층 두터워진 깊이감을 선사한다. 목탄가루의 본질성과 직관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몸의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태고의 침묵같은 깊이감이 더해진 것.

“목탄 드로잉에서 목탄가루와 몸을 활용하면서 탐구의 대상이 나에게서 세계로 확대됐죠. 보다 근원적이면서도 통합적인 본질에 대한 탐구라고 할까요?”

사실 이번 전시에는 제외됐지만 목탄 누드 드로잉과 목탄가루와 몸을 활용한 드로잉 사이에 ‘산’ 작업이 끼어있다. ‘산’ 작업은 우연히 경험한 암벽등반에서 ‘산 형상’에 대한 또 다른 신세계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후 여러 해를 산과 함께 했고, 급기야 강원도 두타산 아래 삶의 터를 잡기까지 했다. 지독하게 ‘산’에 몰입한 시간들이었다.

“정상에서 보는 산과 암벽에서 보는 산의 형상이 전혀 달랐어요. 그 매력에 끌려 우리나라 산을 섭렵했고, 드로잉으로 옮겼어요. 재료는 여전히 목탄과 함께 천연재료와 유화를 사용했어요.”

‘산’ 작업부터 선을 손으로 문지르고 스피드와 퍼포먼스를 도입하는 등 동(動)적인 행위들이 추가됐다. “스피드가 추가되면서 액자에 걸린 작품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박제된 느낌이 들었죠. 작업 당시의 스피드와 몸 행위도 작업의 일부인데 액자에는 빠진 것이니까요. 그때부터 퍼포먼스를 도입하며 빠졌던 부분을 채웠어요.”

이번 전시에는 영상 설치 작품도 소개되고 있다. 작품에는 성난 바다를 담은 영상과 목선(木船) 위 겁에 질린 듯한 아이의 울부짖음이 성난 파도 소리와 겹쳐지며 묘한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03년 히말라야 스케치여행중 티벳에서 만나 후원자가 된 소설가 정혜인 씨의 소설을 시각화한 것이다. 정 씨의 슬픔을 위로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의 표현이다. 그녀는 “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술에 취해 아이와 함께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파도는 치고 술에 취해 파도에 맞서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배 모서리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소설 속 아이의 이야기를 형상화 한 것입니다. 소설 속 아이의 슬픔에서 정혜인 작가의 슬픔을 보았어요.”

백수연의 예술은 ‘일체화’를 지향한다. 그녀는 몸과 마음, 앎과 행동이 둘이 아닌 하나로 인식하고 둘의 합일을 추구한다. 여기에는 진정성에 대한 작가적 고민이 전제돼 있다. ‘산’ 작업을 할 당시에 산에서 살다시피하며 산을 온 몸으로 느끼려 한 것도 ‘산’의 내면까지 읽으려는 진정성에서 기인한다.

이런 경향은 또 다른 영상 작품 ‘자연에 대한 지극한 표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영상 속에는 누드로 웅크린 그녀의 등 위에 관람객이 목탄 가루, 밀가루풀, 해초풀, 밀가루풀을 섞어 만든 재료를 부으면 온 바닥을 캔버스 삼아 몸으로 빠른 스피드로 드로잉을 그려나가는 백수연이 있다. 재료와 몸과 정신의 일체화가 하나의 작품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

“저는 삶과 죽음을 하루를 통해 경험해요. 아침에 태어나서 저녁에 죽다는 개념이죠. 그것의 반복이 우리의 삶이라고 봐요.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에 ‘찰라’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 ‘찰라’야말로 작업자가 예술행위에서 만나고 싶은 첫 순간이자 마지막 순간이기도 해요. 그때가 무의식의 절정이자 작업 행위, 생각과 말들이 일체화 되는 상태죠.” 전시는 B커뮤니케이션에서 29일까지. 010-3811-1229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