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양화 넘나드는 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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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신문
  • 승인 2017.03.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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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차 규 선

회화에 분청사기 제작 기법 도입

도자기 제작용 흙 바른 캔버스에

물감 덧칠 후 긁어내는 방식 특징

철학적 성찰 담아내기보다

고향 경주에 대한 그리움

한국 전통美·정서 표현 집중

서양화가 차규선의 전시가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7월 30일까지·055-340-7000)과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4월 2일까지·055-382-1001 )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차규선 작 ‘풍경’

나무와 꽃을 그리는 서양화가 차규선은 전통 분청사기 기법과 현대 회화를 거침없이 오간다. 단색 작업도 하고, 아찔한 색의 향연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동양적인가 하면 서양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작업을 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는 어렵다. 전혀 다른 느낌의 화풍을 동시에 견지해 왔기 때문. 그렇다고 종잡을 수 없이 복잡다단한 것도 아니어서 화가도 관람자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을 정도, 딱 그만큼의 변화를 추구한다. 그는 ‘영리함’ 아니면 ‘영악함’ 둘 중 어느 편일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분청사기도, 꽃 작업도 다 계기가 있어 시작했죠. 단색과 다색 작업에도 이유가 있었어요. 영리하거나 영악할 정도로 계산적이질 못해요. 그저 그림을 그리면서 만나지는 인연들이 있으면 그 끈을 놓지 않고 잡아왔을 뿐입니다.”

초기에는 극사실주의를 그렸다. ‘차카소’라 불릴 만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지만 길이 아니다 싶어 일찌감치 접었다. 사실 지루하기도 했고, 재미도 없었다.

회화에 분청사기 기법을 도입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어느 전시장에서 유약에 덤벙 집어넣거나 철사나 붓 자국을 그대로 승화시킨 분청자기를 보고 매료돼 분청사기 기법을 차용했다.

이후 분청토, 백자토와 같이 도자기 제작에 쓰이는 흙을 고착 안료를 섞은 뒤 캔버스 표면에 바르고, 그 위에 아크릴 등의 흰색 물감을 뿌리거나 덧칠한 다음 나무주걱, 나뭇가지, 부러진 붓 등으로 표면을 긁어내어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도공의 손을 떠난 후 가마 속 불과 바람이 도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듯, 차규선의 분청자기기법의 회화도 비의도성이 개입한다.

흙의 의지와 시간, 그리고 햇살 등의 비의도적인 조건들이 화가의 붓 터치에 끼어든다. 달갑지 않은 비의도성을 그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흙이 마르기 전 2~3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는 악조건이 있죠. 이전부터 그림을 빨리 그리는 스타일이어서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일필휘지가 가지는 매력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결과는 작품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맡겨야죠.(웃음)”

꽃 회화 작품, 특히 ‘매화’ 연작은 분청사기 기법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했다.

이 작업도 거의 10여년 정도 해 왔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에서 고흐의 유명한 ‘꽃피는 아몬드 나무’보다 정작 크게 유명하지 않은 ‘배꽃’ 작품을 보고 몸이 얼어붙는 듯 한 감동을 받고 ‘아름다운 그림’에 대한 눈을 뜨면서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배나무 한그루가 그려져 있었는데 배꽃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 그림을 보고 내가 너무 오랫동안 미학이나 이론 같은 비본질에 매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하죠.”

형형색색의 물감을 캔버스에 흩뿌려 놓은 것 같은 ‘해탈(Nirvana)’ 연작은 분청사기 기법이 가지는 색의 단조로움에 대한 허기를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시작했다. 이 연작은 설치 작업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차규선의 다양한 화풍의 작품에 공통으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통 한국의 정서’다.

전통 분청사기 기법을 대놓고 들여온 작품은 물론이고 순수 회화 작품에서도 그윽하면서도 따뜻한 한국적인 정서가 지배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는 그의 고향이 경주라는 것, 둘째는 서양화 전공자면서도 한국의 전통 예술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향유해 온 것.

“환경이 그랬어요. 천년 고도 경주가 고향이라 일찍부터 옛것들을 보고 자랐어요. 대학원 시험에서 제2외국어를 한문으로 선택할 정도로 고전에도 관심이 많았고, 도자기는 물론이고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 같은 조선의 화가도 좋아했죠.”

이쪽이든 저쪽이든 화풍은 각자도생, 제 갈 길을 가지만 작품들은 하나같이 아련하다. 쏟아져 내리는 아지랑이처럼 무언가로 스멀거린다. 차규선은 이를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내 예술에는 거창한 의미나 깊은 철학적 성찰은 없습니다. 단지 내 고향 경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있죠. 세월이 흐르고, 인위적인 것들이 옛 정취를 밀어내고 있지만 여전히 경주는 제 기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있고, 내 화폭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차규선의 전시는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8월 13일까지·055-340-7000)과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4월 2일까지·055-382-1001)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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