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도 고통도 다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라
욕망도 고통도 다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라
  • 황인옥
  • 승인 2017.11.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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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노병열展’
입체 형상서 설치 예술 확장
물감 중첩시켜 고드름 표현
느림·기다림의 미학 실천
평면 전시에 흰색으로 통일
탄생부터 죽음까지 순환 그려
인간성 회복·자연 순응 메시지
봉산-노병열전1
노병열 작가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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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속도가 남들과 달라 유난히 빨랐다. 문득 속도가 의식 속으로 들어오면서 속도와 작품과의 연관성을 고민했다. 때마침 캔버스의 바탕에 물감을 반복적으로 중첩해 보라는 지인의 조언이 있었고, 망설임 없이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기 시작했다.

칠하고 굳히기가 반복되자 작업 속도가 지난해졌고, 물감이 중첩되면서 신기루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캔버스에 물감의 무게가 쌓이니까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밀도와 깊이감이 생겨났다. 거기에는 선 하나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터닝포인터는 세기말에 왔다. 정확히 1999년 10월 31일 12시경이었다. 물감의 중첩과 흘러내림에 의한 입체 형상을 발견했다. 이 입체와 자연에 역행함으로써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현대인이 중첩됐다. 깨달음이었다.

“물감 고드름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자, 고드름이라는 자연이 만든 조각이자, 물질문명의 요소로 다가왔다. 나는 물감 고드름을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물질문명이 성장하고 소멸하는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는 인위적인 자연현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초기에는 평면에서 입체 형상을 구현하다, 이후 설치로 확장했다. 평면에서 시작해 주전자나 신발, 돌, 옷걸이 등의 설치로까지 이어진 것. 입체나 설치나 물감을 바르고 중력에 의해 흘러 내기게 한 다음 굳히고, 다시 물감을 바르고 흘러내리는 작업은 동일하게 적용됐다.

중력으로부터 파생된 고드름은 일종의 ‘인간 고드름’이다.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세계의 상징물과 같다. ‘인간 고드름’은 다시금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해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일종의 외침이다.

“인간의 고통은 세상의 흐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고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근 시작한 봉산문화회관 전시에는 기물 대신 평면을 활용했다. 평평한 화면 위에 물감을 올리고 뒤집어 굳히기를 반복해 고드름 형상을 구축한다.

여기에는 우연과 필연이 공존한다. 평면 위의 고드름 현상이 중력에 의한 우연의 산물이라면, 언뜻언뜻 보이는 의도적인 규칙적인 선은 주제를 강화하는 작가의 의식적 행위로부터 왔다.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입체 형상에 경계선을 그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문명에 대한 경계다. 경계와 경계를 허물자는 의미다. 과거 삶의 주체였다가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기계에 밀려난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의미와도 같다.”

노병열은 예술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 삶 속에서 예술적 깨달음을 구한다. 무엇을 그리겠다고 치열하게 고민하기 보다, 삶에서 우연적으로 만나는 주제를 의식 위에 올려놓고 예술적으로 재해석한다.

“억지로 하기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다. 예술의 소재나 주제도 자연 현상처럼 접근한다. 억지로 욕망하면 폐단이 온다.”

흘러내림과 굳는 과정은 생멸(生滅)의 원리와 동일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흰색만을 고집했다. 고드름이 태어나고 죽는 현상을 협의적으로 강조한다면, 흰색의 사용은 생명과 순환이라는 보다 광의적인 의미가 부가된다.

“오직 흰색만 사용했다. 흰색은 생명의 색이자 순환을 의미한다. 흰색이 점령한 전시장에 햇살이 비취면 태어나서 죽은 생명이 다시금 새 생명에 대한 기운을 받게 된다. 일종의 순환이다.”

노병열은 애써 ‘주장’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깨달음을 시각화해 관객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태도를 견지한다.

하나의 평면에 형상을 구축하고, 동일한 패턴의 수십 장의 평면을 한 공간에 구축함으로써 전체와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짓는 이번 전시 작품 역시 이러한 태도를 따른다.

“관객이 작품을 보고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느끼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 기억공작소.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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