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살지 않는 곳에 만든 서식지…정혜숙, 봉산문화회관 조감도展
새가 살지 않는 곳에 만든 서식지…정혜숙, 봉산문화회관 조감도展
  • 황인옥
  • 승인 2018.06.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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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새가 공존 못하는 도시에 의문

오브제와 회화로 둥지·놀이기구 구현

인간중심 비판하되 인간에 희망 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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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혜숙 초대전이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서 8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봉산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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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지역의 자연은 풍요 그 자체였다. 수많은 동식물이 인간과 공존하며 열대우림이 선사하는 풍요를 영위하는 것을 목격했다. 2015년 노마딕 레지던시에 참여하던 중 인도 남부 첸나이에 한 달 간 머물 때의 기억이다. 당시 작가 정혜숙의 의식 위로 자연과 자연에 기대어 사는 존재들이 툭툭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자연미술 레지던스 프로그램에도 참가를 했다. 작가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생각들과 재료들이 작업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시기가 그때부터였다”고 귀띔했다.

인도의 기억 때문일까? 인도에서 돌아온 어느 서울 거리에서 낯선 새소리를 듣자 그녀의 의식이 미세하게 떨렸다. 초현실적으로까지 들리는 새소리를 따라 눈길을 돌려보니 이국적인 새를 판매하는 ‘필리핀 버드’라는 상점이었다. 자연의 섭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새장에 갇힌 새의 상황이 그녀에게는 혼돈이었다. 그러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새장에 갇힌 새를 보니 허공을 비상하는 자연에서 사는 새가 보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어요. 왜 그런지 생각해봤는데, 인간의 문제였어요.” 작가가 보기에 서울시민들은 새가 인간에게 미칠 폐해를 거부했고, 그 대안으로 인간이 새를 제어할 수 있는 상황, 즉 새장 속의 새를 선호했던 것. 그녀는 필리핀 버드 상점의 새소리를 녹음했고, 2017년 울산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에 설치작업으로 구현해 전시했다. 작품명 ‘필리핀 버드’였다.

새에 대한 기억은 또 있다. 2018년의 일이다. 지난 4월 한 달간 인도 뉴델리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작업할 때였다. 인도 뉴델리 하늘에 유달리 독수리 떼가 많았다. 독수리 떼를 따라 하늘을 응시할 때마다 다양한 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새들을 관찰하는 일은 하루 일과 중 중요 업무가 됐다. 당시 정혜숙은 한국과 대조적인 인도 새들의 분포도를 보고 의문을 품었다.

“뉴델리와 서울의 상황에서 단순히 먹이와 공해의 문제로만 새의 분포도를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시민들의 새와의 공존에 대한 합의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 여겼어요.”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개념미술작가 정혜숙 초대전의 제목은 ‘조감도(鳥瞰圖)’전. 작가 스스로 ‘새’의 입장이 되어 새가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서식지를 구축한 작품을 설치했다. 오브제, 드로잉, 회화를 통합적으로 설치에 녹여냈다.

‘조감도’는 ‘필리핀 버드’의 분화 버전이자 지난 4월 인도에서의 경험의 총합이다. 사면이 유리로 마감된 전시장 중앙 바닥에 나무를 연상하는 구조물과 새 둥지의 재료가 되는 나뭇가지를 놓았고, 옆에는 새가 목을 축일 분수대를 설치했다. 허공에는 새가 놀 수 있는 놀이기구를 달았으며, 유리 벽면에는 신문지로 만든 나뭇잎을 드로잉처럼 펼쳐놓았다.

“도시에 새가 돌아왔을 때 내가 만든 ‘서식지’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의 입장이 되어 새의 ‘휴식처’를 만들었어요.”

작가는 개념미술을 추구한다. 작품 자체보다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과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는 현대미술의 한 경향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녀는 개념미술을 구현하면서 특정 주제나 형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주제의 심화보다 다양한 주제를 탐닉하는 것에 끌린다. 그럼에도 일관된 흐름을 견지하느냐는 질문에 “의식을 건드리는 다양한 주제와 형식이 작품으로 구현된다. 작품들에 공통점을 발견하게 될지는 더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웃음을 띠었다. ‘필리핀 버드’나 ‘조감도’는 그 흐름들 중의 한 편린이다.

개념미술의 출발선은 호기심 내지는 의문이다. 호기심을 주제화하고 아이디어를 더해 시각적으로 펼쳐놓는다. 작가는 호기심을 발현하고 아이디어를 풍성하게 하는 방법론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던져졌을 때의 불안감을 즐기며 새롭게 대면하는 존재나 현상에 의식의 지평을 열어놓는다.

이때 “비판정신 내지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는 비판의식 속에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굳이 그녀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바로 이 ‘희망’의 메시지다. “곰곰 생각해보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연과 공생하는 방식을 찾는 것을 보게 되죠. 아주 정제된 환경을 추구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연적인 것을 갈망하죠. 그 본능이야말로 ‘희망’의 씨앗이 아닐까 싶어요.”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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