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를 강타한 태풍, 의료법 개정안
의료계를 강타한 태풍, 의료법 개정안
  • 승인 2017.09.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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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 원장

새 정부 출범 후 여러 가지 정책 변화로 어수선한 의료계에 엄청난 태풍이 들이치고 있다. 국회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한의사에게 X-ray등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추진하여 의료계가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현행 의료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역대급의 의료법 개악 소식에 접한 의료계는 의협을 비롯한 모든 의료단체에서 일제히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지난 16일에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투쟁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다양한 구성원을 지닌 의료계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률로 이렇게 신속하게 단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이는 어떤 댓가를 치루고라도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의학계는 한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을 배우므로 한의사도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의료계의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반대는 직능 이기주의라고 비난해 왔다.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여 촬영하는 것은 굳이 의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으며 실제 병의원에서 방사선사가 촬영을 맡고 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촬영이 아니라 촬영한 영상을 정확히 판독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에 10시간만 근무하고 주 5일제를 준수한다 하더라도 4년간의 수련기간이면 10,000시간을 영상과 함께 보내야 한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몇 시간 영상의학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현대의료기기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한의학계의 자신감에 황당하다 못해 허탈하기까지 하다. 1993년 있었던 약사의 한약 조제 허용 논란을 한번 상기해 보자. 당시에 한의사는 국민에게 더 좋은 접근성을 제공하고, 적절하게 배웠다고 주장하는 약사들의 한약 조제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약사들은 약용식물학을 배웠으므로 충분히 한약 조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한의사는 약용식물학만으로는 본초학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며 한약 조제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한의사들의 주장대로 단편적인 교육만으로 완벽한 의료를 서비스하기는 힘들다. 약용 식물학만 배워 한약을 조제하겠다는 약사의 주장보다, 수련과정을 포함한 10여년을 영상의료기기와 살다시피 해야 겨우 판독 가능한 수준이 되는 영상의학을 몇 학점짜리 수업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이 더 황당해 보이지 않는가. 한의사는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되고, 약사는 한약을 제조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으니 한편의 코미디로 치부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이번 개정안이 내포하고 또 다른 문제점은 이번 법안을 발의한 모 국회의원이 과거 국정감사에서 한 “공항검색도 X-ray를 쓰는데 왜 한의사는 쓰면 안되나?” 발언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의학계의 속내를 잘 함축한 말이며, 동시에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내포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말이다. 공항 검색대 X-ray로 인체의 질병을 진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용에 면허가 필요 없어서 경찰이든 한의사든 써도 무관하지만, 진료에 사용하는 X-ray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 된다.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 불합리한 규제이므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규제와 면허를 구별 못하는 무식의 소치인 것이다. 의사 면허제도는 의사들이 잘 먹고 잘 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근본 취지는 환자의 안전이다.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배우고 국가가 인정하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면허를 부여하여 환자 진료를 허용함으로써 환자가 올바르게 치료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의사는 의학으로 진료하고, 한의사는 한의학으로 진료하고, 수의사는 동물을 진료 하라고 면허 제도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결코 ’한의학의 현대화 및 국가경쟁력 강화‘나 ’한의학의 발전‘의 문제가 아니며 ’국민의 건강 증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기존의 면허 제도를 부정하고,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뒤집어 한의사에게 수익을 안겨주겠다는 대책 없는 불장난에 불과하다.

지금 의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몇몇 한의학 옹호론자들이 국회에서 발의한 이 법안이 통과되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허용될 경우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의료법 개정안은 아무리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틀렸다. 확실히, 명백하게 틀렸다. 틀린 일이 일상의 현실로 다가와 파국을 맞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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