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귀 명창(名唱) 무라카미 하루키
[문화칼럼] 귀 명창(名唱) 무라카미 하루키
  • 승인 2018.02.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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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무라카미 하루키는 엄청난 선 인세를 받고 글을 쓰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소설 뿐 만 아니라 의뢰 받은 서평, 자신이 추진하는 기획물 등 다양한 글을 왕성히 쓰고 있다. 일흔의 그가 긴 시간동안 좋은 글을 꾸준히 써오고 있는 원동력은 운동과 음악이다. 장거리 러너(runner)인 그는 매년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트라이애슬론 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평소에도 매일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오로지 글을 쓸 수 있는 체력을 갖추기 위해서란다. 운동이 작가에게 필요한 기초 체력을 길러 준다면 음악은 그가 소설가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잘 알려진 대로 서른에 작가로 데뷔한 그는 그때까지 직업으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 이전의 무라카미 역시 그 행적이 예사롭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생긴 트랜지스터라디오로 팝뮤직에 빠져들었다. 열다섯 무렵에 접한 재즈 콘서트의 충격으로 팝은 라디오로, 재즈는 콘서트에서 즐기게 된다. 그 후 고등학생시절 눈뜨게 된 클래식, 이렇게 세 갈래의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그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서 음반들을 모았다. 그런 음반들을 소중하고 정중하게 들었고, 구석구석까지 외웠으며, 그것이 귀중한 지적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값싸게 음원을 구해 듣는 요즘 세태와는 많이 다르다. 음반이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할 때 드는 비용, 그것을 온몸으로 듣는 시간 투자를 했을 때 음악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라카미는 그의 소설에 음악을 많이 등장시킨다. 하루키와 음악에 대한 단행본이 출간될 정도며, 그의 작품에 나온 음악으로 구성된 콘서트도 열리고 있다. 때로는 그의 글을 낭독도 하면서….이처럼 음악은 그의 작품을 풀어가는 훌륭한 매개체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의 작품을 완성시켜준다. 즉 작품의 중요한 소재일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영감(靈感)의 원천이 음악이라는 얘기다. 서른 이전에 무라카미는 피터 캣(Peter Cat)이라는 꽤 괜찮은 재즈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오로지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해온 남다른 음악사랑은 예기치 않았던 작가 탄생을 가능케 했다.

그의 작품 중 ‘잡문집’과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라는 책이 있다. 잡문집은 에세이를 비롯해 여러 책들의 서문·해설과 각종 인사말, 짧은 픽션 등 그야말로 잡다한 글을 담고 있다고 이름 지워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그와 음악과의 인연과 사랑은 주로 록과 팝 그리고 재즈에 대한 것이다. 한결같이 LP음반을 사랑하는 무라카미, 심지어 같은 음악이라도 음반 무게에 따라 사운드가 달리 들린다는 대목을 보면 미시적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그를 느낄 수 있다. 그는 글 쓰는 법을 음악의 리듬에서 배웠다. 문장을 써 내려갈 때도 재즈의 리듬을 타며 쓴다고 한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마에스트로 오자와 씨와 클래식에 대한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보면 무라카미에 대한 경외감이 들 정도다. 하루키의 기획으로 만든 이 책은 마에스트로와 9개월에 걸쳐 도쿄와 세계 곳곳을 다니며 나눈 음악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대체로 이런 식이다. 먼저 무라카미가 음반을 틀어놓고 분석하고 느낌을 이야기 하면 오자와가 부연 설명하며 그 이유와 철학적 해석을 더하는 형식이다. 오자와가 누군가?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후원했던 최정상급의 지휘자다. 그런 대가 앞에서 무라카미의 해석은 정확하다. 대단히 분석적일 뿐만 아니라 균형미에 대한 탁월한 감각 까지 보여준다. 심지어 연주자가 실수할 뻔 한 것까지 읽어낸다. 문학과 음악의 두 정상이 나누는 대화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것이 콜라보레이션이다.

하루키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을 것과 주위의 사람들이나 일어나는 일을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 하라고 말한다. 작가로서 운동과 음악이 그에게 중요 하다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수 있는 힘은 집중력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차원의 종이에 인쇄된 기호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거기서 자신의 입체적 음악을 만들어 내는 마에스트로와 같이 자신도 새벽에 홀로 집중해서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오로지 글을 쓴다. 오후에는 긴장을 풀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꾸준하게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 한다는데 나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종일 바쁜데 결과가 없다.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그를 닮고자 하는 의욕이 생긴다. 또한 음악은, 집중해서 음악만 듣는 흉내도 내본다. 그럼 나같은 범인(凡人)도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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