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知己)의 등대
지기(知己)의 등대
  • 승인 2018.05.0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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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중고교생들이 2020년부터 배울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 ‘자유’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를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찬반 논란이 뜨겁다. 보수 측에서는 ‘사회’나 ‘인민’ 민주주의와의 구분을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진보 측은 1972년 박정희대통령이 만든 유신헌법에서 도입된 반공주의의 잔재는 청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따따부따할 생각은 전혀 없다. 각각의 주장들이 나름의 설득력은 있으니 말이다. 용어의 선택이나 의미보다도,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언론을 탄압하고 예술인들의 활동을 제재한다면 그따위 ‘자유’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보다 무 한쪽이라도 맘 편하게 베어 무는 편이 낫다는 소리다. 남영동에서 스러진 자유의 넋들이 어디 한 둘인가. 갑론을박에 길들여진 꾼들의 유치한 정쟁(政爭)놀이는 이제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하나둘 개발될 때마다 반드시 한 쪽에서는 과거의 향수나 익숙함을 들어 비판하는 무리들이 있어왔다. 가령 e메일이 처음 나왔을 때에도 손 편지의 아련함을, 노트북이 등장했을 때에는 400자 원고지를 괴발개발 써내려가던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난필(亂筆)을 추억하며 괜한 너스레를 떨던 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편리하게 잘 쓰이고 있지만, 당시에는 불편한 것들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은, 얄미울 정도로 빠르고 쉽게 처리하는 이기들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소중한 것들은 지키는 것이 옳다. 지금도 우리는 소중한 이에게는 가끔 손 편지를 쓰기도 하지 않는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독자에게 사인을 할 때마다 긴장하는 필자처럼, 타고난 악필인 경우에는 감사하기 그지없다.

정작 사라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상하리만큼 집착하는 것도 부조리한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선언문의 문구가 무에 그리 특별하거나 별난 것이 없지 않은가. 인지상정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 별도의 언급이 없었음에도 즉각적으로 대북 방송 장비들을 신속하게 철거하는 현 정부의 실천에 박수를 보낸다. 이는 반세기에 걸쳐 남과 북이 대치하면서 비방을 일삼던 잔재의 소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반신반의하던 국민들조차 북한에서도 대남방송 장비를 즉각 철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남과 북은 이렇듯 서로를 서서히 이해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분단이라는 거대한 적폐를 해결할 수 있다.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이념의 노리개로 여태까지 휘둘림을 당해왔으면 이제는 자주통일의 꿈을 이루어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시인 고은의 ‘등대지기’는 엉뚱한 계기로 불거졌지만,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잘못’은 인정을 시작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교과서에 버젓이 그의 작품으로 실렸던 등대지기는 지금은 중년층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이미 알려져 있다. 2010년에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 바 있다고 하지만, 이미 시비(詩碑)까지 세워진 ‘등대지기’는 그의 것이었다. 영국 민요에 일본 시인이 쓴 가사를 번역한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혹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의 성추행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됨됨이를 가늠해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는 소위 의식 있는 민족작가의 대부(代父)로 행세해왔다.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문학 행사나 강연장에서 수차례 마주쳤던 그는 그야말로 방대한 강의 자료와 더불어 열띤 강의로 매번 청중의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를 둘러싼 추문들도 오랫동안 끊이질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대한민국 문단에 또 하나의 숙제가 남는다. 대놓고 일본을 지기(知己)로 삼고 조선의 어린 소년들을 일본 결사대로 내몰았던 대 일본제국의 등대 서정주 시인의 작품성을 기려 미당문학상을 제정하듯 그의 문학상을 제정해서 노벨 문학상 만년 후보였음을 자랑삼으면 될 일인가. 절대 그러해선 안 된다. 문학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의 의지를 밝히는 희망의 등대여야 한다. 부정한 정권과 결탁하여 최고 권력자를 칭송하고 목숨 하나 부지하는데 급급한 비굴한 자들이 득세하면 등대는 얼어붙은 달의 그림자를 밝힐 수 없다. 지금 수많은 문학상들이 어두운 문학의 밤하늘을 어지럽게 비추고 있다. 등대는 바다를 비춰야만 한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과 번뇌로 방황하는 배들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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