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게 묻다
종이에게 묻다
  • 승인 2018.05.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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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수필가)


쓰레기를 종류에 따라 분리를 한다. 종이, 플라스틱, 비닐류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것과 음식물처럼 재활용할 수 없는 일반쓰레기까지 배출하는 시간도 다르고 요일도 다르다. 대용량 쓰레기봉투에다 한꺼번에 넣고 내놔도 그만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을 떠올려보면 아무렇게나 쉽사리 내어놓을 수 없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쓰레기들을 꼼꼼하게 분류하는 일이란 우리가 몸담아 사는 이 지구를 맑고 푸르게 하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 여겨진다. 일회용품들과 인스턴트식품의 과다한 포장지까지 합치면 매일매일 버려도 줄기는커녕 하루만 뒤로 미뤄도 복리로 쌓여 빚더미처럼 늘어나고 만다.

크기에 맞게 차곡차곡 접어 내놔야하는 종이류는 줄로 묶은 다음 가지런히 내어 놓아야한다. 종이팩이나 양념이 묻은 것들은 속에 낀 잔여물을 물에 한 번 헹구어야 하고 병은 팔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가려 뚜껑과 분리시켜 따로 내놔야 한다. 물자가 귀한 나라에 살고 있는 주부로서 늘 양심과 배려의 마음 앞에 서성이곤 한다.

“귀찮은데 그냥 버릴까. 어쩔까.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알아서들 하겠지”라는 생각이 간혹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게으름의 늪에 갇히지 않기 위해 의존하려는 타성을 밀어내려 애쓴다. 같은 장소에 내다만 놓으면 청소차가 알아서 수거해 가기도 하지만 때론 반쯤 접혀진 몸으로 리어카를 끌고 재활용을 찾아다니는 할머니를 일부러 기다릴 때도 있다. 이처럼 쓰레기 하나 버리는 일에도 나의 생각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다.

얼마 전의 일이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갔다가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 때, 선생님의 기억을 통해 만났던 내 모습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내 이름을 부르시며 선생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지금도 종이 같은 건 버리지 않고 묶은 것으로 연습장 만들어 쓰고 있째. 볼펜자루에 몽땅 연필도 끼워 쓸 테고. 아마 넌 지금도 그라고 남을끼다 맞째”

어릴 적, 우리 집은 중국요리 집을 했다. 외식 1순위로 짜장면이 대세였던 터라 밀가루 포대가 매일매일 차곡차곡 쌓였었다. 그 땐 고아원도 얼마나 많았던지. 나눠주기 좋아했던 나는 아버지 몰래 뒷문으로 친구들을 불러놓고 내가 먹을 것이라며 아버지를 속여 짜장면 보통을 시키면 아버지는 곱빼기에 곱빼기를 내어주시곤 하셨다. 그 짜장면을 누가 먹을 것인지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틈틈이 밀가루를 깨끗하게 털어내고 네모로 각을 맞춰 잘라 구멍을 낸 후 검은색 노끈으로 묶어 연습장을 만들었다. 종이가 귀한 시절이라 그렇게 만든 연습장은 쉽게 찢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연필심에 침을 바르지 않아도 글씨가 선명하고 반듯하게 잘 써지곤 했다. 몇 번이고 아버지 뒤꽁무니를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며 “아버지 밀가루 다 팔아 가나. 아직 멀었나.”하며 묻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밀가루포대 한 장 나올때마다 얇지만 공책 한 권 정성들여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친구들은 밀가루포대로 만든 연습장을 가지기위해 자기들끼리 번호를 매겨 순번을 정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히 살피셨던 선생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눈 여겨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기억하고 계시면서 잊지 않고 내게 칭찬을 해 주신 것이다.

가끔 아이들 책장을 정리하다 보면 전혀 쓰지 않은 연습장이며 메모지들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요즘은 홍보용으로 만들어 무상으로 나눠주는 곳이 많다. 쉽게 얻은 것이라 그런지 새것임에도 쉽게 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분명 다르다. ‘아껴쓰라’는 말을 아이들은 잔소리로만 듣는다. 쓰레기는 우리가 보고, 듣고, 먹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모든 흔적이 아닐까. 땀을 뻘뻘 흘리며 쓰레기를 분리해놓고 노트, 메모지, 화장지, 달력 등 재생지로 거듭난 종이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나는 종이 위에 글을 쓰느라 베어진 수많은 나무들의 희생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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