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남편과 살면 힘들다?
효자 남편과 살면 힘들다?
  • 승인 2018.06.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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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효자 남편과 살면 힘들다?”라는 말이 있다. 단어만 떼어서 보면 ‘효자’도 좋은 단어고 ‘남편’도 참 좋은 단어다. 그런데 효자라는 단어와 남편이란 단어가 결합을 하게 되어 ‘효자 남편’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정말 효자 남편을 둔 아내는 힘들까? 오늘 가족치료 이론에 근거해서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몇 해 전 한 여성분이 상담을 요청해왔다. 처음 10여분은 한숨과 형식적인 대답과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다가 그녀의 입에서 남편이란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저수지에 고여 있던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듯,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서러움과 억눌린 감정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 장장 두 시간동안 그녀의 이야기는 이어졌고, 드디어 “아이고 제가 주책처럼 너무 말을 많이 했지요?”하면서 끝이 났다.

그녀가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하면 “내게 죄가 있다면 효자 남편 둔 죄밖에 없다”라는 말이었다. 자신은 늘 뒷전이고 그 어떤 것보다 시댁만 먼저 챙기는 남편 때문에 너무 속이 상하다는 것이었다. 효자 남편을 만나면 괴롭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며 그녀의 딸은 절대 효자한테 시집을 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편이 아직 ‘원 가족’(결혼하기 전의 가족)과의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문제에서 분화(分化)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가족관계가 힘들어진다. 가족에는 결혼하기 전의 원 가족이 있고 결혼을 하면서 자기가 새로 형성한 가족인 생식 가족(형성가족)이 있다. 원 가족에서 생식가족으로 발전될 때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 가족으로부터 분화를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가족 분화’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며 가족치료이론의 대가인 머레이 보웬(1913-1990)은 가족이 건강하려면 가족 구성원들이 분화가 잘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론 핵심개념 중 자기분화가 있는데 자기분화라는 뜻은 “정신내적으로 사고와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 “대인 관계적으로는 자신과 타인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분화수준이 낮은 사람은 주관적 감정에서 객관적 사고를 분리하기가 어렵고 대인 관계에서도 분화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주적 정체감이 적어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쉽게 융화가 되어 자신과 타인을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웬은 분화이론을 가족에 접목시켜 가족분화이론을 완성했고, 가족의 문제는 미분화된 가족의 형태에서 발생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족 상담현장에서 ‘가족분화’를 강조해왔다. 미 분화가족은 온 가족이 감정적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정서적으로 함께 고착되어 있는 상태가 되며 상대방에 대한 정서적 반응성이 높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 상호거부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초래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특히 원 가족(결혼 전 가족)과의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생식가족(결혼 후 형성된 형성가족)에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식물처럼 결혼을 통해 가족 간의 분화가 일어난다. 이 때 제대로 분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 가족에서 생식가족의 분화과정을 ‘우선순위 정하기’로 필자의 언어로 바꿔서 설명해 보겠다. 상담이나 부부 교육을 할 때 필자는 이렇게 설명을 많이 해준다. 촌수(寸數)대로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강조한다. 원 가족일 때는 부모가 가장 가까운 촌수 1촌이기에 1순위가 되고, 형제는 2촌이므로 2순위가 되면 된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생식가족이 되면 없던 촌수가 하나 더 생겨나게 되는데 바로 무촌(0촌)인 부부의 촌수다. 그럼 1순위보다 더 우선순위인 0순위를 위해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 즉, 부모보다 부부가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효자 남편은 여전히 1순위인 시댁 부모와 시댁 식구들이 우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효자 남편을 만나면 힘들다”라는 말이 생겨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위하고 진정 한편이 될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된다. 자녀들이 보기에도 “엄마는 아빠를 가장 우선하고, 아빠는 엄마를 가장 우선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0순위 남편과 아내부터 먼저 챙기자. 그게 행복한 가정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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