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과 공약(空約)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 승인 2018.06.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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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제7회 전국 지방 동시 선거가 지난 13일에 치러졌다. 개표결과는 국민들이 예상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구·경북은 보수 유권자들이 건재하고 있음을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자유한국당 후보 당선으로 입증해 주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었다. 당선자들도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이변은 없었다. 민주당 후보자가 대구시의회에 입성하게 된 것도 이변이 아니다. 23년간 의회에 당적이 일원화되어 있었던 것이 이례적(異例的)인 일이지, 이제 겨우 발을 들여놓은 민주당 당선자 4명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행안부장관 김부겸은 유일하게 대구시에서 필적할 만한 정치행보를 가진 진보 인사였다. 그의 사진과 이름이 민주당 후보자 수만큼 이번 선거에서 이곳저곳에 내걸렸지만, 이는 도움닫기의 수준이었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준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현직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기초선거에서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처럼 크게 반영된 경우도 드물었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이번 당선자들을 비롯하여 낙선한 후보자들도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과거 대통령 입후보자 슬로건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보통 사람들이 당선되었다.

유권자들이 영악해질수록 후보자들은 겸손해지고, 유권자들이 무지(無智)하면 후보자들이 사악해지는 선거판을 일컬어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비유하기도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집안에서 누가 정치에 뜻을 가진 이가 있으면, 말리는 축이었다.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손에 비린내가 나지 않고는 생선을 잡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겪다보면, 분노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이성적인 판단으로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개인의 욕심과 당의 집단 이기심에 편승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서 멀쩡한 사람을 버려놓을까 걱정이 되었다.

공약(公約)은 공법상의 계약을 의미하기도 하고,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하여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지켜야 하는 약속인 것이다. 어느 약속이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 ‘공약’이다. 그래서 실현 가능한 공약을 내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후보자들은 공약(空約)을 내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임기간에 해낼 수 없을 것들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자들은 한 마디로 헛된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기초의원을 뽑는 자리다. 기초의원이 무엇인가. 제 발로 뛰어다니며, 우리 동네를 낙후된 곳은 발전시키고, 좋은 것은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당선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구시의회는 모처럼 매우 역동적이고 발전적인 의정활동이 기대된다. 그야말로 그들은 우리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우리 곁에서 함께 일을 해오던 사람들이어서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

대개 말장난은 말을 하는 본인 빼고는 누구나 싫어한다. 비아냥거리거나 투덜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는 시쳇말로 ‘대박’이었다. 형수를 대하는 막말 음성파일 공개는 포털 사이트에서 연일 검색어 1위를 기록했고,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처음에는 정치공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고, 음성파일 변조나 조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직접 들어 보았을 때는 충격이었다. 그 사건이 잠잠해지나 했더니, 이번에는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불거졌다. 진실공방이 오가고, 판단은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선거의 판도는 바뀌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의식과 수준이, 과거의 ‘양반 제일주의’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탓이다.

각종 ‘제일주의’는 그 나라의 정치건 문화건 퇴보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품질제일주의는 산업의 발달을 가져온 대신에 환경오염과 인권유린을 건넸고, 학벌제일주의는 고학력의 인적 자원을 양산한 반면에 대량청년 실업을 가져왔다. 이에 못지않게 대선이나 총선에서 영향을 준 것은 ‘양반’이었다. 양반의 뒷짐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본인만 살아남으려는 비겁과 술수를 보여주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나보다. 이재명 당선자를 선택한 국민이 옳았는지, 어땠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그가 형수에게 막말을 한 배경과 그가 겪었을 갈등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는 있다. 여배우와의 스캔들도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 주었지만, ‘내로남불’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는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았고, 그런 그를 선택한 도민들은 ‘이유’가 분명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당의(黨意)를 국민이 몰라준 것이 아니라, 국민을 몰랐던 당성(黨性)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이 내린 ‘심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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