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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

기사전송 2018-01-24, 21: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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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 애쓰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그것이 좋은 일이든 아니면 슬픈 일이든)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삶에 발생되는 사건들을 선별하여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불시에 닥쳐오는 것이고, 뜻대로 바꿀 수 없는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그렇다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만 누워 입만 벌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어나는 사건은 우리가 선택 할 수 없지만 다행히 우리에겐 선택의 기회가 한 번 더 있다. 그 선택은 발생되는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반응에 대한 것이다. 발생되는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즉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아주 살짝만 바꿔줘도 결과는 바뀔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신경 쓰고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은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다.

인지·정서·행동치료를 주창한 심리학자 엘리스는 자신의 이론을 펼칠 때 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그 말은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건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다. ”라는 것이다. 심리학을 배우고 또한 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접할 때 참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이유도 있고,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미리 오래전에 누군가 했다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연결시켜주는 기분이 들어 참 좋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 이 말을 들은 적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그의 친구와 가족이 위로의 말로 자주 해주는 말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참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네가 힘들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최소한 내가 느끼고 기억하기에는 나는 참 힘들었었다. 돌이켜 보면 ‘왜 나만 이런 시련을......’이라는 생각이 늘 따라다닐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신을 원망했던 것 같다. 남들과 다른 이 아픔을 왜 주시나 싶었다. 누가 내게 위로랍시고 그때 한 말이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반감이 쌓였다.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이라고?’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못 견딜 만큼’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위로가 되거나 힘이 될 리가 없었다. 야속하게도 신은 내 얘기를 들어주시지 않고, 내 편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후로 난 쭈~욱 힘들었다. 몇 년을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계속 초등시절부터 청소년 시기를 지나 청년이 될 때 까지 계속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터널 속에서 원망과 ‘남 탓’이라는 수레바퀴를 뱅뱅 돌던 어느 날 다시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그 말이 내 귀에 들렸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 분명 이전에도 몇 번을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말은 같았지만 그 말을 들은 내 생각이 그땐 달랐다. ‘가만. 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그럼 나는 이미 그걸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데.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잖아?’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종이 울렸다. 첫 키스 때만 울린다는 그 종이 내 머리 속에서 그 순간 울렸다. 나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그동안 난, 나를 참 무시했다. 능력 없고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게 일어난 일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시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난 참 능력 있고 괜찮은 녀석이었다. 큰 시련이 왔다는 것은 내가 이미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오늘도 난 여전히 갈망하고 있다. 내 삶은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어날 사건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그 사건을 대하는 나의 긍정적 생각에 대한 갈망이다.

신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셨다. 이미 당신과 나는 그 시련을 해결할 능력을 가진 멋진 사람임을 꼭 기억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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