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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어디서 머무꼬

기사전송 2018-02-05, 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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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수필가)


모처럼 딸아이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칠성시장을 찾았다. 들어가는 초입부터 석쇠불고기를 굽는 냄새가 먹구름처럼 몰려나와 뱃속을 들끓게도 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목을 붙들기도 한다. 연탄불 위에 구운 고기 한 접시와 상추쌈 그리고 곁들여 나온 된장국까지 가격이 오천 원이다. 요즘 메이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이다. 시장 볼 일이 있을 때면 가끔 들르게 되는 곳이지만 우린 줄만 서 있다 돌아오고 말았다.

요즘은 무엇이든 풍족한 시대다. 특히 먹고 마시는 것이 풍족하다 못해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들로 골머리를 썩기도 한다. 늘 가던 단골집이었지만 추천 맛집으로 등극되면서부터 평소 즐겨 찾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맛집 체험을 위해 전국방방 곳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게 된 것이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골목까지 길게 줄을 섬으로써 주변 가게까지 방해되기 일쑤라고 한다. 음식 값이 올라가는 것에 비해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주머니 사정 편하게 먹던 고객들은 같이 줄을 서든가 아니면 포기해야 한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배신감마저 들 때가 있다. 딸아이와 나는 줄만 섰다가 오는 바람에 영영 한 끼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식당을 하신 적이 있던 부모님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먹는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 기라, 음식 맛은 정성인기라.’

먹방이 대세인 시대에 특히 빼놓지 않고 찾아보는 프로가 있다. 토요일마다 티비 사수를 위한 리모컨 전쟁으로 집안을 떠들썩하게 하거나 바쁘게 한다. 대박 맛집 요리 고수들의 진검승부를 겨루는 프로그램으로 사상 최대의 요리 중계 쇼를 보여주기 위해서 제작했다는 게 그들의 기획 의도다. 말하자면 요리 월드컵 맛집 A매치로서 축구 중계보다 더 실감나는 요리 중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요리 빅쇼인 셈이다.

아내가 혹은 남편이 아닌 쉐프들이 나오는 그들만의 요리쇼는 아닐까. 남이 요리하는 것을 먹고 규격화 되어 나오는 음식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저 집에 있는 것, 냉장고 문만 열면 널려 있는 것,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향신료를 써서 만든다고는 하나 재료부터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는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일부러 시장을 본다 해도 구하기 힘든 재료들이 대부분일 때가 더 많다. 신선도에만 집중할 뿐, 정말 그 재료가 몸에 좋고 이로운 것인지 언급하는 것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조미료를 듬뿍 넣어 입만 달면 되는 쪽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맛있다는 표정에만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그 뿐인 듯 숙성된 시간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음식 하나를 만드는 데도 그 음식을 만드는 주부의 입장에선 재료를 선별하고 고민하고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나누어 먹어야 하는지 까지 수많은 과정을 생각 하게 된다.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감사와 노력, 정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집에 돌아와 딸아이와 나는 묵은지를 총총 썰어넣고 계란 두어 개에 고추장을 넣은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다. 커다란 양푼이를 다리 사이에 끼워 넣고 숟가락으로 바닥을 긁어 먹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더 먹으라며 금을 긋기도 하면서…. 갑자기 딸아이가 숟가락으로 양푼이를 툭 치며 “엄마, 맛집이 따로 있었네. 여기가 바로 맛집이네.”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철학자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는 말이 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TV에 묻다보면 정작 ‘어떤 음식을 누구와 나눠먹으면서 살아야 할까’라는 중요한 화두를 놓칠 수도 있다. 무엇 때문에 먹는지 어떤 것을 먹어야 건강과 삶의 행복까지 얻을 수 있는지는 한 가정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의 정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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