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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주부의 자아정체성

기사전송 2018-03-26, 21: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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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주부)


속에다 불 담는 것은 시뉘 올캐 아니냐.

내 속 풀어 주는 그대는 낭군님이 아니냐.

- 「정선아라리」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네 이름을 들으면 먼 곳에서 퍼져오는 꽃향기처럼 머리로, 가슴으로 번지는 향기가 있다. 거리가 멀어 갈 수 없기에 더 가보고 싶은 곳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이름만 듣고, 이야기만 듣고도 충분히 내 가슴에 울림을 주는 너. 오늘에야 비로소 너에게로 간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내 남편과 아들,딸과 함께 말이다.

남편은 너에게로 가는 내 마음을 모른다. 그리고 자기는 너에게 별다른 느낌이 없기에 나의 흥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너에게로 가는 경비를 지불한다는 말에 기뻐했을 뿐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에는 왼쪽에는 절벽같은 산이, 오른쪽에는 길다란 댕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구불거리는 강이 있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린 강에는 물이 반짝거리며 흐르고 있었고, 산의 나무들도 더러운 때를 씻고 산뜻한 녹색으로 어우러져 있다. 남편은 긴 강을 따라 차를 몰다보니 정선아리랑의 느림과 구수한 정한이 떠오르는 듯 “아~리~랑~ 아~리~랑 ” 한 소절을 부른다.

남편의 아리랑 소리를 듣고 말많은 아들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하고 흥을 낸다. 아들의 노래가 끝나자 딸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하고 한을 풀어낸다.

구불구불한 이 길을 예전에는 발로 걸어다녔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돈을 벌러 다녔을 이 길. 즐겁기도 했겠고, 걱정거리가 있기도 했겠고, 노여움에 앞이 가리기도 했겠다.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그들이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침묵으로 가고 있으나 가볍지 않은 그들의 발걸음. 말을 하면서 길을 걷기에는 지쳐 그들은 나지막히 노래를 부를 것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자신의 가락을 부를 것이다.

홍희는 자신의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싶다. 그러나 자신이 잡고있는 것들이 많아 홀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언제쯤이면 그 고개를 넘어 자유로이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푸름이 어우러진 시원한 강가를 달리면서도 홍희는 한편으로 답답함을 느낀다.

중학교때 이후 형성된다는 자아정체성. 아줌마가 된 나이에 아직도 자아실현을 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다. 버리지도 못하고, 실현하지도 못한 꿈.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지만 너무 오래 꿈만 꾸고 있다. 이런 생각하다 보니 아우라지 강가에 이르렀다.

강물이 얕은 곳에 넓적한 바윗돌로 징검다리를 만들어놓고, 다리위에는 초승달같은 문양이 있다. 강건너에는 나루터를 사이에 두고 오지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처녀의 조각상이 있다. 연인들은 싸리골에서 동백꽃을 따며 정이 들었다 한다. 어느날밤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려 아우라지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노래를 총각이 지어 불렀고, 건너편 처녀도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가 정선 아리랑의 기원이 되어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고 한다.

헤어진 연인은 아니지만, 홍희는 가정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에 있는 자신의 꿈을 그리워하며 아리랑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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