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국수주의자를 옹호하는 국가
편협한 국수주의자를 옹호하는 국가
  • 승인 2015.06.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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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근 대구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
수 독도영토학 연구
소장
독도는 거리상으로 울릉도에서 보이는 섬으로서,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연합국이 역사적 권원에 의거하여 한국에게 관할권과 통치권을 인정함으로써 국제법으로도 분명히 오늘날 영토주권 행사하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오키 섬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독도는 태고 때부터 일본과는 전혀 연고가 없는 섬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신라국이 울릉도를 본거지로 한 우산국을 정벌한 이래, 고려, 조선시대의 울릉도는 물론이고, 가시거리에 있는 독도도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조선시대 한 때 주민을 쇄환하여 울릉도를 빈 섬으로 관리했던 시절에도 ‘우산도’라는 섬 이름으로 독도를 관리했다. 그런데 침략자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을 서서히 들어낼 쯤에 고종황제가 칙령40호로 ‘울도군’을 설치하여 울릉도를 비롯하여 독도까지 관할 영토임을 명확히 했다.

한편 17세기 일본의 두 가문의 어부가 조선이 울릉도를 비워서 관리하는 사이에 몰래 잠입하여 노략질을 하다가, 은밀히 울릉도에 들어간 어부 안용복과 조우하여 양국 어부들 간에 다툼이 생겼다. 결국 그것은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양국 정부 간의 외교문제가 되었다. 이때에 일본정부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까지도 조선영토임을 인정하고 울릉도 도해면허를 취소하고 일본어부들의 동해(東海)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 시기에 일본의 두 어부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 밀항한 적은 있었지만, 일본정부가 울릉도는 물론이고 독도에 대해서도 영유권을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본정부가 독도를 영토적으로 접근한 것이 바로 러일전쟁 때였다. 당시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한 어부가 독도를 한국영토로 생각하고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독점하기 위해 한국정부의 허가서를 받으려고 일본정부의 한 요인에게 의뢰했다. 이때에 일본 내무성은 독도를 한국영토로서 인정했다. 그런데 외무성이 나서서 한국을 무시하고 러일전쟁 중이라는 상황을 악용하여 한국 몰래 내각회의를 거쳐 시마네현고시 40호로 ‘주인 없는 섬이기에 선점한다’는 형식으로 편입조치를 취하여 영토적 야욕을 들어내었다.

이미 일본정부가 1869년과 1877년 두 차례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영토가 아니라고 분명히 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6년 소학교 교장출신의 국가주의자 오쿠하라 헤키운은 새로운 영토 ‘다케시마’ 취득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케시마와 울릉도’ 를 집필하여 처음으로 독도의 역사를 조작했다. ‘은주시청합기’는 독도가 등장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여기에 있는 “오키 섬의 서북에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 일본의 서북경계는 오키 섬이다”라는 내용을 조작하여 “일본의 서북경계는 울릉도와 독도이다”라고 왜곡했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이 패전하고 연합국이 독도의 관할권과 통치권을 인정하여 한국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게 되었다. 일본정부는 독도를 강탈하기 위해 미국에 접근하여 1951년의 대일평화조약에서 최종적으로 일본영토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려고 했다. 연합국은 결국 최고사령부가 결정한 ‘독도=한국영토’를 변경하지 않았다.

그런데 1952년 일본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승만라인’을 선언하여 독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했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한일협정에서도 독도를 강탈하려고 어용학자를 동원했는데, 시마네현은 다무라 세이자부로로 하여금 『다케시마문제의 연구』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새로운 연구』, 일본 외무성은 가와카미 겐조로 하여금 『다케시마의 역사지리적 연구』를 집필하도록 하여 ‘다케시마=일본영토’론을 조작했다. 이때 역사학자 야마베 켄타로는 치밀한 독도연구를 통해 이들의 역사조작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 후에도 일본정부가 계속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이를 보고 있던 역사학자 호리 카즈오는 한 차원 높은 독도연구로 비판했다.

1998년 일본정부가 새로운 어업협정을 강압하여 독도 주변수역을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체제가 되었다. 그러자, 한 우익인사 시모조 마사오가 조작된 ‘다케시마=일본영토’의 선행연구를 그대로 답습하여 시마네현과 일본정부를 선동했다. 이때에도 역사학자 나이토 세이추는 임종을 앞두고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새로운 차원의 독도연구에 매진하여 어리석은 일본정부를 질타했다.

아베정권은 더 이상 국수주의자들을 옹호하지 말고, 매의 눈으로 정의를 외치는 역사학자들에게 겸허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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