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할 만한 자리
통곡할 만한 자리
  • 승인 2017.04.2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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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봄비가 내린 후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날 금호강변에 나갔다. 강아지 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나 있었다. 왠지 까닭 없이 봄바람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울렁울렁했다.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강아지 똥은 민들레로부터 거름이 있어야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강아지 똥은 기꺼이 자기의 몸을 쪼개 민들레 뿌리로 스며들어 거름이 되어준다. 강아지 똥의 사랑으로 민들레는 예쁜 꽃봉오리를 피운다.’

안동 조탑리 동화작가 권정생이 살던 다섯 평의 집을 찾아갔다. ‘몽실 언니’의 인세와 원고료 60만원을 받고도 돈이 모자라 동네 청년들이 집터를 다듬고 지붕을 올려 주었던 집이다. 아무도 살지 않은 어수선한 마당에는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사는 동안 마당의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피고 지는 온갖 꽃들과 함께 살았던 권정생 작가였다.

부엌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부뚜막을 들여다보니 금방이라도 ‘톳째비(도깨비)’가 나올 듯 음산하였다. ‘하늘이 좋아라. 노을이 좋아라. 찔레덩굴에 하얀 꽃도…’하고 노래하던 권정생이 무척이나 좋아하였던 집 뒤 ‘빌뱅이 언덕’은 옛 모습 그대로 있었다.

콩팥에서 피가 쏟아지고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 고통이 시작됐고 2007년 권정생이 세상을 떠났다. 유언장에서 그는 ‘용감하게 죽겠다.’고 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제발 없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겠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그의 통장에는 인세와 원고료로 모은 10억 원이 넘는 돈이 있었다고 한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이 짠하다. 마당 가장자리 바위에 앉아 있으려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냥 소리쳐 울고 싶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호곡장(好哭場)’이 나온다. ‘통곡할 만한 자리’를 말한다.

요동 벌판을 본 박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얹고 “아. 한바탕 울만한 곳이로구나! 가히 한바탕 울만한 곳이야!”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옆에 있던 정진사가 “이렇게 천지간에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큰 세계를 만나서 별안간 울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하고 물었다.

박지원은 “천하의 영웅들은 울기를 잘 하였고, 절세미인들도 잘 울었네. 다만 소리 없이 울고 남모르게 눈물을 옷깃에 적셔가며 훔치곤 했지. 그러나 천둥치고 번갯불이 일어나듯이 소리쳐 우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네. 사람은 일곱 가지 감정(七情)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네.

기쁨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노여움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슬픔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사랑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미움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욕망이 지극해도 울 수 있고, 답답하게 맺힌 감정을 활짝 풀어버리는 데는 소리 질러 우는 것이 제격일세.”

정진사는 “통곡하는 까닭을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무엇에서 구해야 할지요?”하고 여쭙는다.

박지원은 “그것은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아야 할 일이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뒤에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날 때 느낀 정은, 일곱 가지 정 가운데 무엇일까? 캄캄한 태중에서 억눌러 지내던 아기가 바깥 세상에 나올 때 얼마나 세상이 시원했겠는가. 그 시원함에 갓난아기는 진실 된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던 게지. 한 마디의 우렁찬 울음 말일세. 온 몸을 흔들면서….”

청장관 이덕무도 ‘영처고자서’에서 ‘글을 짓는 것이 어찌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즐기는 것과 다르겠는가?’하였다. 어린아이란 ‘천진’ 그대로이다. 웃다가 울다가 토라졌다가 다투다가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또한 욕심 부리며 크게 소리치며 통곡하는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구이(동쪽의 다른 나라)에 살고자 하였다. 어떤 사람이 “누추한 나라에서 어찌 살겠습니까?”한다. 공자는 “하누지유(何陋之有)”한다. ‘어찌 누추한 곳이 있으리오.’하는 뜻이다. ‘하누지유(何陋之有)’는 풍속이 아름답게 변화하여 너절하거나 더러움이 없음을 의미한다.

‘권정생동화나라’로 향하면서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억울해 하면서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검찰청 앞에서 통곡한다. 더러는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진정 통곡할 만한 자리는 권정생이 살던 집이 아닐까?’ 독백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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