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혐오인가?
누구를 위한 혐오인가?
  • 승인 2017.10.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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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얼마 전 ‘아이가 버스에서 내린 걸 발견한 아이엄마가 울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버스 기사가 버스를 그냥 출발시켰다’는 기사가 난 뒤 버스 기사에 대한 비난으로 온라인이 도배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며칠 뒤 ‘기사 잘못이 아니다. 카톡하던 엄마가 아이가 내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새로운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엄마를 맘충이라며 비난했다. 일명 ‘240번 버스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방적인 기사의 잘못도, 그렇다고 전적인 엄마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저 우발적인 사고였다. 자칫하면 위험했을지도 모를 사고는 다행히 아이를 찾으면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벌어진 사람들의 비난으로 버스 기사와 아이엄마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던 기사와 아이엄마,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긴 ‘240번 버스 사건’은 뉴스 기사를 만들어낸 사람 누구 하나 처벌 받지 않고, 댓글로 욕설을 퍼부은 사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잊혀져갔다. 대신 사건이 터진 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맘충’이라는 주변의 눈총에 시달려야 했다.

‘공공장소에서 자기 아이밖에 모르는 한심한 행동을 하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엄마’라는 의미의 ‘맘충’. 아이를 키우는 숭고한 일을 하는 엄마를 벌레로 만든 이 혐오단어가 탄생한 뒤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벌레로 보는 것 같다”는 고통을 호소한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는 어떤 식으로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아이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될 때까지 엄마는 이웃에게, 교사에게, 동료에게, 길이나 식당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난다. 그런데 예전에는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면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아, 저 맘충!”이라고 일축한다.

아이엄마가 전 국민의 혐오 대상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도그포비아’라는 단어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슈퍼주니어의 멤버인 최시원씨의 개가 이웃주민을 물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때문이다. 피해자가 사망하자 ‘개를 당장 안락사 시켜라.’, ‘개주인을 구속하라.’, ‘최시원은 드라마에서 하차하라.’ 등의 댓글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최시원 측에서는 가벼운 찰과상으로 통원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이라지만 개의 생일파티를 SNS에 올린 일이나, 과거 최시원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발언한 것까지 밝혀지며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아직 피해자의 사망이유가 개에게 물린 것 때문인지, 병원에서 생긴 2차 감염 때문인지 확실치 않은데도 사람들은 최시원과 그 가족을 넘어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까지 혐오의 범위를 넓혀간다.

물론 사람을 여러 번 물었던 개를 목줄도 없이 산책을 시키는 행동을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다. 개에게 물리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법으로 명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으로 좋은 개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목줄을 메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동네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던 개들과 견주들은 지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나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나 개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드문 일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혐오는 도를 넘어 확대되고 있다. 그뿐인가? 급식충, 한남충, 흡연충 등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벌레로 만들어버리는 혐오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는 이 문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이와 반려동물은 가정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기 전에 먼저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자. 그들은 벌레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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