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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잃어버린 시계를 찾으며

기사전송 2018-05-01, 21: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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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소지품 관리를 잘하는 편이다. 휴대전화나 지갑, 수첩, 필기구는 물론 거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물티슈 하나라도 허투루 버려두지 않는다. 미세먼지로부터 눈을 보호해주는 안경과 선글라스, 우산이나 모자, 머플러, 장갑 등 특정 시기에만 사용하는 물건들도 웬만해서 잃어버리는 일이 없음을 다행스럽게 여겨오던 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정을 나눈 것이 손목시계가 아닌가 한다. 사시사철, 나와 함께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체온과 맥박을 공유한 동반자였다고 할까.

그런데 근자에 들어 언제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그 시계의 행방이 묘연해져버린 것이다. 외출을 하던 중 무심코 시계를 보려는데, 아뿔싸! 왼쪽 손목이 허전하게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바쁘게 나오느라 깜빡 시계를 챙기지 못한 것이라 가볍게 생각했다.

주말이 지나고 다시 외출을 준비하던 날, 화장대 위의 시계가 놓여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요즘 세상에 시계는 없어도 그만이다. 스마트폰을 열면 언제나 시간을 알 수 있다. 공공건물이나 지하도에도 백화점이나 식당에서도 어디서나 궁금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시간이다. 하지만 시계가 없으니, 더 자주 손목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몇 번이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으나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옷을 벗지 않는 한 시계를 잃어버릴 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부관리실이나 헬스장 또는 대중목욕탕으로 가능성의 범위가 좁혀졌다. 사흘 전에 갔던 피부관리실로 연락을 해보았다. 혹시 옷장에서 주인 잃은 허름한 손목시계를 보지 못했느냐고. 며칠째 가지 못한 헬스장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값비싼 명품은 아니다. 모양이나 색상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평범한 가죽 줄에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다만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을 키웠다. 아니, 어쩌면 평소 일어나지 않던 현상이 나에게도 발생했다는 사실에 더 큰 실망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자주 만나는 친구에게 저간의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는 목욕탕에도 빨리 확인을 해보라며, 걱정을 해주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아파트 열쇠나 돋보기, 가위 등을 찾지 못해 구석구석 헤매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놓아두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핀잔을 하고는 했었다. 엄마는 ‘그러려고 애를 쓰는데도,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잠깐 쓰고 놓아두었으니, 바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고…. 그러던 엄마가 아흔이 되신 지금은 항상 정해놓은 곳에 물건을 놓아두는 습관을 들이니, 그런 일이 훨씬 줄게 되었다며 신기해하신다.

시계 잃어버린 것을 주변에는 말하지 않았다. 앞뒤 상황을 도무지 설명할 재간이 없으니 어쩔 것인가. 젊은이들의 건망증이야 바빠서 그럴 것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지만, 노년에 접어드는 사람에게 건망증이란 기억의 쇠퇴와 무관하지 않기에 애써 거부하고 싶은 것 또한 솔직한 심정이다.

또 며칠이 지났다. 그림을 그릴수도 있을 듯 눈에 삼삼한 시계를 찾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 시계 뒷면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하고 기다려준다면 모를까, 더 이상 찾아다닐 방법은 없었다.

자책감에 사로잡혀 잠시나마 의욕을 잃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무렵, 화장대 아래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순간, 동공이 활짝 열리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뚜껑을 여는데, 하얀 휴지들 사이에 파묻힌 낡은 시곗줄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갑고,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자칫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가까운 곳부터 찾아보지 않고, 엉뚱하게 보낸 시간이 참 우습고 기가 막혔다.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는 속담이 공연한 남의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그런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싫지만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월이 가면 누구나 늙고, 자신에게 정해놓은 잣대나 칼날도 서서히 무디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가오는 어버이날에는 엄마 손을 잡고, 잃어버린 시계를 찾은 이야기를 하며 크게 한 번 웃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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