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걷는 삶의 길
그들이 걷는 삶의 길
  • 승인 2018.05.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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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하게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구본무 LG 회장의 빈소에 적힌 글이다. 구본무의 죽음. 그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생전의 그의 삶과 경영도 적지 않은 울림을 남기더니 그는 죽음마저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소탈했던 고인의 궤적은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으로 이어지고 그 뜻은 우리 안에 잔잔한 감동으로 자리 잡는다. 연명치료 대신 조용한 영면으로, 회사장 대신 3일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그의 마지막 길은 ‘구본무’답게 단아하다. 생전의 그는 탐욕을 위한 재산 다툼, 주도권을 위한 경영권 다툼이나 정경유착을 위한 전략적 혼인이 없는 단아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았다.

‘정도경영’을 지향했던 LG의 경영이 그의 삶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 분과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던 나는 ‘LG 노트북’에서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을 쓰면서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할 따름이다.

빗길 고속도로에서 고의로 추돌사고를 내 의식 잃은 운전자를 살린 한영탁씨는 구본무 회장의 생전 ‘LG 의인상’ 마지막 수상자이다. 그는 중앙분리대를 들이 받으며 전진하던 코란도 차량의 앞을 자신의 투스카니 차량으로 가로막아 다중 추돌사고를 막았다.

위험한 순간에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도 다행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그가 보인 용기와 대처능력은 정말 칭찬할 만하며 존경스러운 것이다. 삼십여 년의 운전에서 많은 위험한 상황을 보기도 하고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와 같이 행동하기는 정말 어렵다. 겨우 그 상황을 피하기에 급급하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처능력이 없을 것이다. 의인이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한영탁씨는 이 시대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준다.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 목사인 매제의 담임목사 위임식이 있어 가족으로 초청을 받았다.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이지만 위임식은 경건하고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친구 목사들의 덕담은 있었지만 위임받는 목사를 그렇게 높이지 않았고 정성이 담긴 선물은 있었지만 매제인 목사와 동생은 평소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위임식에 옷을 새로 한 벌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윗옷은 만원이고 바지는 이만 원인데 속옷까지 다 합쳐도 십 만원이 안 된다며 깔깔 웃는다.

친구이자 매제인 목사는 제법 큰 교회의 담임 목사를 몇 차례 섬긴 경력이 있다. 그때마다 교회와 싸운다. 그 싸움은 교회에서 좋은 차를 드리려하고 목사는 너무 과분하다며 거절하여 일어나는 이상한 싸움이었다. 매제보다 더 절약하는 동생은 검소하다 못해 추레하기까지 해서 가족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면박을 주면서도 우리는 우리 누이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나는 스스로 급여를 너무 많이 받아 교회에 미안함을 안고 있는 매제인 그 목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리 크지 않는 교회의 젊은 목사가 대형 승용차를 타거나 대형교회 목사들이 외제차를 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우리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과 욕망을 숨기며 또 은근히 과시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그것을 발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구본모 회장의 부고를 접하며 사람이 가야 할 평범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 주신 그 분을 애도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무릅쓰고 다중 추돌사고를 방지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한영탁씨를 생각하며 마음이 훈훈해진다. 지극히 평범한 그에게서 쉽지 않은 삶의 길을 배운다. 강남 한 가운데 학교 강당을 예배당 삼아 예배하는 그 교회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교회에서 목사로서 섬기는 소박한 매제와 동생의 삶이 자랑스럽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을 보며 약해진 마음의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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