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2018 러시아 월드컵
단상(斷想), 2018 러시아 월드컵
  • 승인 2018.06.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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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지구촌이 요즘처럼 숨 가쁘게 움직인 적도 드문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유례없던, 평화적인 분위기가 만들어 지는가 하면,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인 통상마찰로 전운이 감돌고 있기도 하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은 남과 북의 화해모드를 이어가고, 경제적인 협력을 이어갈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렇듯 각국 정상들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들며, 자국의 이익과 명분을 찾아나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토의 나라 러시아에서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21번째로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첫 번째 상대 스웨덴을 맞아 패하고 말았다. 선수들은 전반전이 시작되었을 때, 정확한 패스로 여러 번 득점의 기회를 맞았지만, 스웨덴의 높은 신장의 벽을 깨지는 못했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스웨덴은 우리가 반드시 이기거나 비겨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 편성이었기 때문에 그 실망감은 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경기의 내용면에서는 질 수밖에 없었다는 편이 객관적이라 할 수 있겠다.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는 모두 자유와 평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를 목적으로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각국의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두고 벌어지는 축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적이거나 역사적인 반감을 가진 국가와의 경기에서는 국민들이 사활을 걸고 응원을 한다. 한일전에서 우리가 일본을 반드시 이겨야한다고 마음을 먹는 것도, 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30년 초대 월드컵 결승전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맞붙었다. 첫 월드컵인데다가 팽팽하게 신경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축구공의 선정은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에는 월드컵 공식 축구공이 없었던 상황이라, 양국이 모두 자국의 공을 사용하겠다고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결승전에서 전반전은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후 1970년에 제 9회 대회부터 아디다스가 제작한 공식 지정구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이런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다.

면적 세계 8위, 인구 31위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에서 우승을 2번이나 차지한 FIFA랭킹 5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한 마디로 축구 강국이다. 매회 우승후보에 오르고, 불세출의 선수 한명은 보유한 나라, 이번에는 어릴 때부터 축구신동으로 알려진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가 출격했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면적은 127위, 인구는 129위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구만큼은 강국이다. 6월 22일 벌어진 양국 간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눈살을 여러 번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은 크로아티아 선수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골키퍼의 실책으로 골문을 열어준 이후 급격하게 무너져 내린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의 정신력은 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임에만 진 것이 아니다. 화면에는 감독과 신의 손으로 불리어지던 마라도나의 흥분한 모습이 번갈아가며 비쳤다. 경기 전에 이미 마라도나는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몸짓으로 구설에 올랐는데, 그의 구설(口舌)은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상투적인 것이어서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아르헨티나의 축구는 프랑켄슈타인의 짜깁기한 얼굴만큼이나 흉했다. 우리 동네 조기축구만도 못한 조직력을 보여 주었으며, 같은 편끼리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장면은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니콜라스 오타멘디가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축구공을 발로 차서 넘어진 상대 선수의 얼굴을 가격하는 모습이었다. 충격이었다. 흥분한 선수에게 놀라운 인품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망나니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필자가 잘못 보았나 싶었지만, 세계인의 눈은 정확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쓰러져 있는 선수에게 발길질을? 그것도 축구공으로 말이다. 아르헨티나 선수 그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참패한 점수만 부끄러웠을 뿐일 테니까 말이다.

그 전까지 필자는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특히 메시가 뭔가 놀라운 경기를 보여줄 거라 내심 기대하며,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필자는 크로아티아를 응원하게 되었다. 크로아티아가 승리하였고, 아르헨티나는 16강도 확신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필자의 바람대로 되었음에도 뭔가 큰 것을 잃어버린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번 가 본적도 없는 나라, 아르헨티나는 한때 추억이 깃든 나라였다. 후안페론 전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의 나라, 주점의 종업원에서 영부인까지 올랐던 그녀의 삶과 죽음을 다룬 오페라 『Evita』에 나오는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들으면서, 어쩌면 그녀의 방만한 삶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기껏 동양인의 눈꼬리나 흉내 내는 축구스타 마라도나와 쓰러진 선수에게 발길질을 하는 나라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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