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려 길들여 놓은 저 골목 범어시장
할머니 땅을 물고
버텨온 세월만큼
닳도록 무늬도 없이
피고 지던
소문들
차갑게 밀어내고 무릎 감춘 어스름이
층층이 쌓여가는
오피스텔 그림자로
멍하니 몸을 섞는 낌새,
굽은 등에
쓸린다.
◇김미정=2004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 <고요한 둘레>
2011년 제 5회 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감상> 대구 수성구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 신천이 흐르고 그곳에서 멱을 감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을 비롯한 고가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하루가 다르게 대나무처럼 하늘을 찔러대기 시작하면서 무미하고도 건조한, 그럼에도 그곳이 서민들에게는 최고의 학군과 생활 편의를 내세워 ‘꿈의 주거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실제로는 인간이 살아갈 최적의 공간은 산과 강을 낀 자연에 가까운 곳임을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은 국밥집 두어 개만 남아 그곳이 시장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 곳, 범어 시장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이 터전이었을 할머니의 굽은 등이 무성한 소문에 진장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 이 작품은 씁쓸하게 오늘을 노래하고 있다. -김사윤(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