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에서
뻘겋게 타는 쇳덩이만 보면서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다 가고
꽃이 피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당신이 떠났다는 소문이 찾아오고
뻘겋게 뻘겋게 타는 쇳덩이만 보면서
납작하게 두드려 패면서
단단해져라
부디 단단해져라
패면서
물 뿌리면서
이놈아
이놈아
울컥울컥 피 쏟을 것 같은 오후도
가버리고
덜컥
저물녘
◇김정석=전남 해남 출생, 영남문인회
한국예인문학 편집위원, 시집 <별빛 체인점>외
<감상> 저물녘에 ‘당신’은 제철소에서 일을 하는가 보다.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당신’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안타깝기만 하다. 그 사이 ‘당신’의 ‘당신’이 떠났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스스로 담금질을 하는 ‘당신’은 어느새 시인이 된다. 쇠도 녹일 뜨거운 열기 앞에 서면 소름이 끼친다. 땀조차 흐르는 걸 못 느낄 극한의 환경에서 일만 하는 당신은 쇳물을 세월 속에 흘려보내면서 드디어 덜컥 위기감을 느낀다.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덜컥’ 저물녘이 되어 버렸음을 깨닫는 대목에선 차라리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부터 ‘당신’은 낙엽이 지는 걸 보려 할 것이고 가을이 깊어 가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일 테니 말이다. -김사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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