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윤의 시선(詩選)> 어머니의 참빗 서금자
<김사윤의 시선(詩選)> 어머니의 참빗 서금자
  • 승인 2017.11.07 21: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금자
서금자




어머니는 아직껏 참빗을 쓰신다

노인네 치아처럼 듬성듬성한 빗살에

오십 년 세월이 박혀 있다



새 빗으로 빗으면

머릿결은 쉽게 길이 들지만

깔깔한 말총처럼 마음이 일어선다고

흐트러진 집안마냥 어수선하다고



어머니는 지금도 낡은 참빗을 고집하신다

이빨 빠진 빗이어서

여러 번 손이 가지만

올올의 머릿결에서 어머니는

묵묵히 세월을 빗고 계신다

도란도란 그 세월 조각을 모으는 손끝

엉성한 참빗이 빚어내는 저토록 정갈한 리듬



어머니께 필요한 건 그 빈 틈새였던가

한평생 꽉 찬 인생으로만 살아오신 길

그 어디쯤에 있을 사잇길 같은


◇서금자=<한국문인>등단. 울산시인협회
 한국예인문학상, 울산 시문학교실 회장
 문집 <아침을 열며>외



<감상> 참빗은 대개 대나무나 대모를 이용해서 만드는데, 매우 촘촘하며 빗에 들기름 따위를 발라 비듬을 제거하기도 한다. 얼레빗이 반달 모양으로 성긴 데 반해 참빗은 잘못 빗으면 머리카락이 뽑힐 만큼 치밀하다. 시인은 어머니가 살아온 삶이 이렇듯 빈틈이 없는 줄 알았나 보다. 참빗은 급히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머리가 엉키게 마련이다. 천천히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칠 때 거울 앞에 앉아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함께 했을 참빗, 반백년 동안 사용한 참빗은 이제 낡아서 이가 하나둘 빠졌지만, 어머니가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흐르는 세월과 함께 머리카락이 듬성해져서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어머니는 그 빠진 참빗의 빗살 간격만큼, 딱 그만큼의 삶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김사윤(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