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질 무렵
문학 동아리
홍등가를 써대던
여드름처럼 느물터진
곱슬머리 선배
군 행군 시 여성 생리대가 최고라고
낙서 같은 시를 써놓았던
자치방 앉은뱅이 책상처럼
낡은 멋이 나던 장발 선배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인공 빛을 팔며 낮의 삶을 꾸렸던
악바리 같은 시를 써대던 내 친구
순한 사랑만 찾아 헤매다 눈이 커진
또 다른 절친은
뒤엉킨 인간실타래
어디까지 풀어내며 살고 있을까
태양처럼 빛나는 상처는
살아가는 동안 생기는 작은 생채기 일뿐이라고
무모함조차 무모하지 않았던
내 스물은 어디로 갔나
가진 것 없이 충만하기만 했던
그늘을 짓이겨 빛으로 만들어내던
그 스물들은
다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가버렸을까
◇박인숙 =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낙동강문학 신인 최우수상 수상
<해설> 생각해 보면 아득히 먼 옛날 같은 이야기지만 가슴 떨리는 청년 시절의 동경들이다. 시대 변천에 따라 그 시대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지만 인간 내면에 잠재된 근본은 늘 그 자리에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이 한 편의 시에서 자신의 젊음을 간략하나마 총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짜릿한 젊은 날의 표상들, 문학, 군, 곱슬머리 선배, 생리대, 앉은뱅이책상 등등... 시인의 길은 고달플 수 있다. 하지만 시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사명 같은 것들도 있어 행복한 길이기도 하다. -이재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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