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무렵 안강 들에 서 본다
넓은 들 전부가 무논이다
반듯반듯한 수면에 하늘이 비친다
지상의 논 위에 하늘 논이 한 들판 더 생긴다
하늘 논에는 푸른 하늘이 담겨져 있고 흰 구름도 고여 있다
지상의 논과 맞붙어 똑같이 일을 한다
흰옷 입은 농부가 들어가 모를 심는다
흰 구름 속에 새파란 벼 포기를 찔러 심는다
물에 비친 새의 날개에도 한 포기 넣고 손을 뺀다
농부의 손에 하늘이 묻어 있다
벼농사는 지상의 일만이 아니라는 듯
하늘과 땅의 협업이 예사롭지 않다
물 마르면 자취 없어지는 하늘 논
농사를 지어 본 적 없지만
내가 먹은 밥 속에도 저런 논에서 나온
쌀이 있었으리 가끔 쌀을 씻으면
싸락싸락 별 씻기는 소리가 났다
밥을 함부로 먹은 날은 괜히 하늘이 무서웠다
날마다 섭취하면서도 무심했던 경이로움
우연히 지나던 들에서 느낄 때
논두렁마다 피어난 풀꽃에도 엎드리듯
마음이 절을 한다
◇이해리 = 경북 칠곡 출생
2003년 평사리문학 시부분 대상
대구경북작가회 이사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해설> 하늘 논에는 하느님이 구름과 비를 불려 농사를 짓고 땅의 논에는 사람들이 자연에 속박하여 농사를 짓는다. 모두 함께 하는 숙명의 인연이 푸르게 자란다. 무논에 반영된 그 풍경이 하늘과 땅으로 인입되었듯이. 한 톨의 밥알도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적 사고가 이 시를 읽을 만하게 한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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