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산허리
억새 머릿결 빗는 바람이 일제
생의 무상함 일깨우는
낙엽 흩 날고 있어
산 너머 바다 건너
내가 있어 향하고 있음을
네가 무지개를 좇을 제
내가 뒷바람 몰아치는 찬 서리 역경
너무 오래도록 이었음을
지금 무언의 눈빛만으로
사랑했노라, 그리워했노라,
가슴에 묻고 있노라고
세월은 말없이
강물처럼 흘러가니
무뎌진 해묵은 찻잔 식을세라
날(日)을 담아 데우고
달(月)을 담아 데워도
언제나 물망초는 살포시
◇최윤업 = 경남 의령 출생
동아대학교 졸업·한국시민문학협회 고문
‘창작과 의식’ 이사 역임
<해설> 찻잔에 피는 꽃은 그리움일 것이다. 잃어버린 젊음이나 야심찬 기개, 끝없이 펼쳐지던 욕망까지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 데에는 세월 저쪽에 잃어버리고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가슴에 담아놓기까지는 온 몸으로 침투해 버린 백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화자가 누구인가 날밤을 찻잔을 데우면서 ‘나를 잊지 말라’는 시어 한 줄을 놓치지 않는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