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남녀무늬항아리
춤추는남녀무늬항아리
  • 승인 2018.05.2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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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하
나는 이제 흙이 되기로 하네

흙이 되어 목이 긴 저 민무늬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별빛보다 먼 여행을 할 것이네

그리하여 전생 이전의 전생

태고의 내가 살던 마을에 당도하면

한 줌 고운 흙으로 당신을 빚을 거네

몇 밤이고 사랑하며

눈이 맑은 아이도 낳을 거네

흙의 후예들이 대추알처럼 자라나고

마침내는 거룩한 계보의 일가를 이룰 거네

흙으로 빚은 하늘 아래서

푸른 꽃煎(화전)을 나눠 먹고

당신과 나 불멸의 춤을 추며

별빛보다 먼 여기까지 되짚어 올 것이네

그리하여 어디 낯익은 땅 변방에서 출토되면

목이 긴 시대의 태평한 역사가 되어

민무늬 속 깨지지 않는 성전으로 남을 거네



전시장 유리벽 너머 토우를 닮은 남자

숨소리까지 음각하여

다시 천년보다 먼 여행을 할 것이네

나는 다시 흙이 되기로 하네


* 춤추는남녀무늬항아리 =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된 7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민무늬에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1차원적으로 음각되어 있다.


◇김일하 = 경북 영주 출생. 2007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해설>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정설과, 흙은 토기로 태어나서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역설. 우리 인생 또한 정설적 역설의 의미망 속에 갇혀있다.

이 세상 어디든 목이 긴 태평한 역사 속에서 성전처럼 토기로 남아 저 천년의 숨소리까지 음각한 채 다시 흙으로 회고한다는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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