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였을 때
내가 물고기였을 때의 습성
강아지였거나
염소였거나
우리 집 외양간의 황소였을 때
그 전생에 내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짐승이었거나
여덟 개의 발을 가진 무엇이었던 간에
그 오랜 습성이 지금도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때
절망과 부끄러움과
후회와 또 자책에 젖는 때
날개를 펴는 순간과
꼬리를 감추는 비열한 모습
내가 무엇이었을까를 가끔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용서할 수 없는 일들
넓은 하늘과 바다와 바람에게
나를 그냥 맡겨버린다
말도 못하는 답답한 순간
노래할 수 없는 슬픈 순간
내가 무엇이었을 때를
기억하려고 한다
나에게서 날개가 보이고
네발로 걸어가는 뒤뚱거리는 한 마리 짐승
그리하여 나는 나를 볼 수 있게 된다
◇박금선= 경북 영일 출생
2004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숲으로 오라>
<해설> 삶의 매 순간마다 건성으로 넘겨질 내가 했던 일들이 그 무엇과 닮아있었을 때 “내가 왜 이러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는 것은 이미 생을 달관한 위치에 있다고 봐야겠다. 젊어선 꿈에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먹고 살기가 무엇보다 절실했으니까.
내게서 날개가 보이는 일이나, 뒤뚱거리며 네발로 걷는 나를 본다거나, 하는 뒤돌아보는 일이 많아질 때 우리는 말한다. 비우는 나이라고, 후회가 자랑보다 많아지는 나이라고, 그렇게 비우고 훨훨 날아가는 나이라고.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