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의 길
예종의 길
  • 승인 2017.01.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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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영국의 전 대처 수상이 가장 동경했던 인물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그의 어떤 점이 철의 여인 대처를 사로 잡았을까?

20세기는 번영 속에서 평화롭게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경제사회를 계획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믿음이 압도하던 시기였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사회주의가 보편적 진리라고 여겼다. 독일의 나치즘,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그런 믿음의 결과였다. 1940년대 영국이 사회와 경제를 규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정부의 손이 구석구석을 누볐던 것도 사회주의의 소산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뉴딜’의 이름으로 정부가 노동시장은 물론 기업도 규제했다. 조세 부담과 정부 지출은 급진적으로 증가했다. 분배와 복지는 정치적 아젠더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사회주의의 세찬 물결과 대립각을 세우고 “사회주의는 반드시 붕괴하고야 말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회주의에게 선전포고를 한 장엄한 책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1944년 펴낸 <예종(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는 경제적 자유는 물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까지도 파괴한다고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아집과 독선을 실천하기 위해 양심과 도덕도 없는 가장 악독한 인물이 폭정의 전면에 선다는 것이 두 번째 내용이다. 이처럼 정치적 폭정과 경제적 빈곤을 야기한다고 사회주의를 고발하는 내용 이외에도 자유시장 경제의 비전을 엄정한 논리로 제시한 것이다. 인간들이 번영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유의 길’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즈와 맞수였던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거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2차 대전 기간 중,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변화가 전체주의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여 경종을 울리고자 이 책을 썼다. 공산주의, 나치즘, 파시즘의 사상적 발원은 모두 전체주의라는 것, 전체주의라는 스펙트럼 내에서 다른 극단으로 간 것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주의로 가는 흐름 자체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대치되는 개념으로 바로 하이에크가 가장 숭고하고 소중한 개념을 짚은 개인의 자유이다. 자유는 어떠한 이유로든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설파한다. 개인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개별 인간에 대한 존중, 그 자신의 견해와 선호를 그 자신의 영역에서는 (비록 그 영역이 아무리 좁게 한정된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과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과 취향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이며, 물론 모든 타인도 자신과 같은 이러한 권리를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

모든 개인은 다 다르다. 개인의 목적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사회의 목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공통되는 가치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전체의 필요들 가운데 일부분 이상 포함하기는 어렵다. 어떠한 조직에서도 제한된(합의된) 영역 외에서는 어떤 최고의 선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 영역 밖에 나가면 더 이상 최고의 선이 아닌 것이다.

법을 통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도로를 만들고 교통규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는 각 개인이 정할 일이다. 그러나 집단주의에서의 법은 법의 집행을 각론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지시성이 된다. 즉 도로에서 개인에게 어디로 가라고 까지 명령을 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자유의 침해다.

1980년대 영국병(英國病)의 치유에 골몰하던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하이에크의 이 책에서 정책적 영감(靈感)을 얻었다. 그는 하이에크에게 “당신이 없었다면 영국병을 치유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내용의 생일축전도 보냈다.

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친(親)시장적 개혁을 통하여 미국과 세계의 여러 나라를 자유사회로 전환하고 냉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하이에크의 영향이다. 그는 이런 공로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을 받기도 했다. 하이에크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최고의 역사적 사건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가 붕괴한 때였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상에서 이 소식을 접한 노학자의 대답은 걸작이다. “거봐, 내가 뭐랬어!”

<김민경·사회복지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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