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 승인 2018.06.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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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한국소비자원 소송지원 변호사
수사절차와 형사재판의 이념은 동일하지만 실제 운영 형태를 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수사와 재판 모두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이념은 동일해 진정한 범인을 밝히고 억울한 범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에 임하는 수사기관은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지목 당한 범인을 반드시 유죄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재판절차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 대원칙 아래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의심이 많이 들어도 다소라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2개의 판결이 선고됐다.

하나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 2명이 옆에 있던 사람과 말싸움이 붙었으나 별다른 폭행은 발생하지 않았고, 이후 술집에서 나와서 주차장에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고 당시 정확한 범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약 1~2달이 지난 후 경찰이 술집에서 말싸움이 있었던 사람의 사진을 구해 피해자에게 제시해 범인이 맞는지를 물어봤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맞다’라고 답했고, 나머지 1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같이 맞았던 사람이 때린 사람이 맞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라고 경찰에 진술했고, 이를 근거로 옆 테이블의 인물이 범인으로 인정돼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런데 대법원판례에 의하면 “범인을 지목하는 진술의 경우 범인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 진술이나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한 후 용의자를 포함해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킨 상태에서 범인을 지목하게 해야 한다”고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고 단 1장의 사진만을 피해자에게 보여줬다. 법원은 피해자의 기억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결론적으로 맞은 사람이 범인을 지목해 완벽한 증거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피해자의 기억에 혼돈을 생길 여지를 경찰이 제공했으므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만일 당시 경찰에서 비슷한 인상착의의 여러 장의 사진을 피해자에게 제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같은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면 당연히 유죄가 선고됐을 것이다. 이 건의 경우는 어떻게 보면 수사기관이 범인을 정확히 잡고도 잘못된 수사절차로 인해 무죄가 선고된 것으로 잘못된 수사로 범인을 놓친 것과 같은 결과가 됐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건은 자신의 10개월 된 아기를 돌보는 돌보미 여성이 어머니가 없는 시간에는 아기를 때리고 학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머니가 집안에 몰래 녹음장치를 설치했고, 그 결과 돌보미 여성이 아기 엉덩이를 때리고 욕설하는 내용이 녹음됐다. 어머니는 돌보미 여성을 고소했고, 수사과정에서 돌보미 여성이 자백까지 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가 선고됐다. 이유는 범인이 사건에 대해 자백해도 자백 이외에 다른 증거가 있어야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

자백 이외에 다른 증거를 요구하는 이유는 자백만으로 유죄가 선고될 수 있는 것으로 할 경우 수사기관에서 고문 등을 통해 무리한 자백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다른 증거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가 몰래 녹음한 것인데 법원은 ‘돌보미가 자녀에게 욕설한 것’을 ‘돌보미 - 자녀’의 대화라고 판단해 통신비밀보호법의 의한 허락을 받지 않은 불법녹음이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증거능력을 부인했고(즉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보았음) 결국 자백이 있어도 보강증가가 없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10개월 된 애기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맞은 것을 증언할 수 없는 점, 어머니가 10개월 된 아기의 대리인으로 ‘아기 - 돌보미’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적법한 행동으로 볼 여지가 있는 점, 어머니의 이러한 행위는 자녀에 대한 폭행을 방지하고 그 처벌을 위한 정당행위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녹음을 전혀 관련이 없는 제3자가 타인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고 불법 녹음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도 있는 듯하다.

이상과 같이 형사사건은 기본적으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대원칙에 따라 가끔은 일반인들의 법 감정과 다른 판결이 선고될 수 있어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입장에서는 참 곤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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