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바라보는 정치권
의료계가 바라보는 정치권
  • 승인 2017.04.02 10: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이번 사태의 의미는 각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와 닿겠지만, 그런 정치적 관점을 배제하고 의료계의 입장에서 지난 4년을 돌아보고 각 당의 대선 캠프에 당부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5년 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보수 여당의 후보로 출마하여 야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 약 70% 정도의 의사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여 직업적 보수성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절대적 지지와 성원을 보냈던 만큼 의료계는 많은 기대를 걸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정권 초기부터 규제 기요틴과 창조 경제의 프레임 내에서 의료정책은 의료계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그 결과, 2013년 취임 첫해 설문조사에서 의사의 70%가 새 정부의 의료정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의료정책을 입안하는 기준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아니라 경제성에 두고, 반대 의견을 무시한 채 정책을 강행하여 의료계 전체가 등을 돌린 것이다. 규제를 철폐하고 창조적 경제로 경제 강국으로 가겠다는 정부의 선전과는 정반대로 의료계에는 새로운 규제가 매일 생겨났다.

입안된 의료법 개정안들은 재앙 수준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 의료계는 모든 역량을 소진시켜야 했다. 눈만 뜨면 새로운 의료악법이 생겨난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악법인 원격의료 허용 법안과 의료 영리화 법안 반대 투쟁에 있어서는 의료계는 물론이고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의료의 공급자와 사용자의 입장으로 반대편에서 충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규제가 다양하게 생겼다.

4월부터는 ‘명찰패용법’에 의해, 의사 등 의료행위자는 자신의 분야와 이름 등이 적힌 명찰을 옷에 직접 표시하거나 목에 걸어 착용토록 해야 한다.

내규에 따라 부서, 직위, 이름이 적힌 사원증을 패용하는 회사는 많지만, 법으로 강제하고 과태료를 처벌하는 예는 의료계가 유일하다. 6월 21일 시행에 들어가는 ‘설명의무법’은 더 한심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진단명, 진료 필요성과 방법 및 내용, 진료방법의 변경 가능성과 사유 등을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을 경우, 의사에게 벌금을 처벌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의사가 당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지만, 설명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면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너무 심한 억지이다.

앞으로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아예 의학 교과서를 복사해서 나눠주고 읽어줘야 할 판이다.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덜 중요한 것은 줄여 환자를 이해시키는 것이 설명의 핵심일 것인데, 의료행위와 관련한 모든 것을 교과서를 읽어가며 설명하면 환자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면피용 설명은 오히려 이해 부족을 초래하여 진료 현장의 오해와 상호 불신을 양산할 것이 우려된다.

‘감염관리를 위한 의료기관 복장 권고문(안)’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의료인의 근무복이 병원균 전파의 경로가 되고 있다는 비난 여론에 편승하여 제작, 배포되었으며 의료기관 종사자의 근무복 등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권고문을 준수한다면,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수술복 형태의 반소매 근무복을 착용하거나 재킷 형태의 가운을 입어야 하고 나비넥타이 외에 다른 넥타이 착용은 금해야 한다.

권고안이라 강제성은 없다하지만 복장, 머리 모양, 장신구 착용 등 자율적으로 시행할 부분마저 하나하나 간섭하겠다는 정부의 규제 위주의 정책 마인드에 의료계의 반발이 심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계는 수많은 비합리적 법안들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오늘 보험 삭감을 피해 살아남기를 고민해야 하고, 내일 입법 예고된 법안을 막기 급급하니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이 암울한 의료계의 현실이다. 언제까지 왜곡된 의료 환경과 의사를 적대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방치할 것인가.

의료는 무엇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비대칭을 가진다. 즉 의사는 의사 외에 다른 직역으로 대신 수 없다는 특수성이 있다. 지금처럼 의사를 불신하고 규제와 처벌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각 당의 대선 캠프에 부탁드린다. 새 정부는 잘못된 의료 정책을 바로 잡아 의사가 마음 놓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선진 의료 환경을 구축해 주길 바란다.

의사는 감시와 규제해야 할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며,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야할 건강의 파수꾼임을 명심하고 의료 정책을 입안해 주길 바란다.

꽃향기 싱그러운 봄바람을 타고 의료계에도 따뜻한 새봄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