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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의료칼럼

욕먹을 각오한 의사의 넋두리

기사전송 2018-03-25, 21: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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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최근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근로자의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 배 아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인상되는 소비자 물가에 더하여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을 보면서, 의료 수가를 돌아보니 회의감이 든다는 이야기이다. 물가는 오르고 직원들의 임금은 많이 올랐으나, 필자의 병원에서 받는 검사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요즘 헬조선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억울한 일이라고 한탄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하는데, 의사들도 할 말이 많다.

진료비 몇 천원만 내면 환자가 원하는 만큼 아무 때나 상담 받고, 주사에 약 처방까지 받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심지어 환자분들 중에는 진료실에 들어와서 20-30분 동안 본인이 궁금한 것만 열심히 물어보고 상담만 하고 가는 환자도 있는데, 진료비를 내셔야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돈을 내라고 하느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국민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선진국의 의료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외국에 거주하다 돌아온 유학생들이나 교포들은 우리 의료시스템이 싸고 훌륭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 전 미국에서 찍은 MRI 사진을 가지고 상담하러 온 재미교포 환자분이 있었다. 상담 말미에 여기서는 검사료가 얼마냐고 물어서 검사비를 이야기했더니 미국의 1/20수준이라고 놀라워했다. 턱없이 싼값에, 더 최신 기계로, 편한 시간에 검사하고, 결과를 바로 설명해 준다하니 진짜냐고 몇 차례 물으면서 마지막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국의 건강보험이 최고라고 하고 가셨다.

이런 가성비 갑인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가 정부의 강압적인 저수가 정책으로 인한 의사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희생에 대해서 감사 인사와 보상이 순리일 것인데, 오히려 사사건건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으로 알고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은 넌센스가 아니겠는가. 현실과 동떨어지게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의료 환경의 왜곡이 심하니 저수가 정책을 수정해야한다고 주장하면, 의사는 돈도 많이 벌면서 더 벌려고 그러냐는 비난을 받는다.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를 허용하는 것은 의료계의 면허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반대하면 직역간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손가락질 당한다. ‘문케어(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검사나 치료 항목들을 순차적으로 축소시켜 2022년까지 모두 보험적용 하겠다는 현 정부의 의료정책)’가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내기 쉬우므로 제도를 보완하고 천천히 시행하자고 주장하면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더는 좋은 정책에 왜 반대하냐고 욕먹는다. 이래저래 욕먹어 아무것도 안 먹어도 저절로 배부를 지경이다.

의사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현재의 저수가 정책 기조의 획일적인 의료시스템하에서는 교과서적인 소신 진료는 불가능하다. 국민들에게 다양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하다. 의료 환경의 왜곡 및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방지하고 의료발전을 꾀하기 위해선 현행의 저수가 정책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지만, 현실의 벽은 아직 높고도 단단하다.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문케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관심과 왜 좋은 제도인데 반대하냐는 질책을 숱하게 접하다보니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함을 절감한다.

지금 의료계에서는 의사협회의 새로운 회장과 집행부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가 진행 중이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의료계의 현실이 어려운 만큼 새 의사협회장에게 거는 의료계의 기대는 중하고 무겁다. 새 의사협회 집행부와 정부의 협상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으리라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말의 기대감도 없지 않다. 현재의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 국면이 해피 엔딩으로 잘 마무리 되지 않으면 결국 그 파국의 종착역은 보건의료시스템의 붕괴이며, 손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우울한 현실이 화창한 봄 날씨로 바뀌는 극적인 반전을 기다리며, 욕들어 먹기 십상인줄 알면서도 동감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 의사의 넋두리를 늘어놓아 보았다. 봄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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