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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문화칼럼

겨울 나그네

기사전송 2017-12-27, 21: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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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많은 사람들이 ‘겨울 나그네’ 라는 단어를 들으면 슈베르트(Schubert)의 ‘겨울 나그네’를 떠올릴 것이다. 독일 출신의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시에 곡을 붙인 24곡의 겨울 나그네 중 ‘성문 앞 우물’로 시작하는 ‘보리수’라는 노래는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도 학창시절 한번쯤 흥얼거려 봤을 만큼 친숙한 노래다. 실연의 슬픔과 아픔을 가슴 가득담은 젊은 나그네,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집에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난다. 겨울의 춥고 어두운, 황량한 풍경들은 주인공의 마음속 쓸쓸함과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한 겨울여정은 그 자신의 마음이 겪는 은유적인 여행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슈베르트의 음악으로 인해 위안을 얻고, 그를 위대한 음악가로 부르고 있지만 그는 살아서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다가 불과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불행한 천재였다. 이런 슈베르트였기에 우리는 겨울 나그네를 슈베르트 그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며, 그의 음악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독일가곡(Lied)하면 피셔 디스카우( Fischer Dieskau)와 헤르만 프라이(Hermann Prey)를 떠올리게 된다. 디스카우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음악가중 한명으로 그의 노래는 철학적이며 절제미를 갖춘, 넘볼 수 없는 지성인의 풍모를 가지고 있다. 1948년 겨울 나그네 독창회를 통해 세계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디스카우는 수많은 오페라에도 출연하며 많은 명반을 남겼지만 그의 음악의 본령은 독일 가곡 연주에 있다. 이전의 성악가들이 창법상 큰 차이점 없이 리트와 오페라를 불렀다면 그는 철학적이면서도 정교하게 리트를 해석해 차원이 다른 음악 세계를 보였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중 겪은 포로생활과 굶어죽은 형에 대한 연민 등에서 체득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들 한다.

이탈리아의 전설적 테너 디 스테파노 ( Di Stefano)가 종전 후 전쟁에 패한 자국민의 자존심을 노래로서 세워 줬다면 독일에서는 디스카우가 그러했다.

디스카우와 독일 가곡연주의 양대산맥 중 한 사람인 헤르만 프라이는 여러모로 디스카우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디스카우와 달리 프라이는 독일 가곡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희극 오페라에서도 불세출의 업적을 쌓았다. 네 살 어린 프라이는 디스카우보다 4년 뒤늦게 첫 리트 독창회를 열었다. 그는 자신보다 앞서가는 디스카우로 인해 고통스러워했으나 특유의 따뜻한 음색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낙천적인 면모로 인해 곧 세계음악계의 큰 별이 되었다. 나는 90년대 초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의 독창회를 본적이 있는데 그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특히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97년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변치 않는 단순성이라고 하였다. 이 말처럼 그는 순수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며 우리들에게 또 다른 기쁨을 준 사람이다.

작년 11월 우리는 또 하나의 겨울 진객을 만날 수 있었다.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가 겨울 나그네를 들고 수성아트피아를 찾아왔다. 옥스퍼드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학자로서 활동하다 서른을 넘겨 영국 위그모어 홀에서 성악가로 데뷔했다. 뒤 늦게 출발 했지만 가곡연주의 세계적 거장으로서 그의 행보는 눈부시다. 수많은 음반 상을 수상한 그는 슈만과 슈베르트 등 독일 가곡에 대한 자신만의 학구적 접근과 독창적 해석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통상 겨울 나그네는 바리톤의 주요 레퍼토리로 인식되어 있으나 그는 독일의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와 페터 슈라이어(Peter Schreier)의 후계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가냘퍼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수성아트피아에서의 독창회에서는 한 시간 십분 이상 걸리는 겨울 나그네 24곡을 한 번의 휴식도 없이 노래했다. 지적인 해석의 음악성뿐만 아니라 체력이 뒷받침된 훌륭한 발성 테크닉까지 겸비한 당대 최고의 리트가수 임을 입증했다.

유난히 빨리 찾아온 이번 겨울, 겨울 나그네와 함께 길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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