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들이 알까봐 겁나는 한국의 정치
한국 아이들이 알까봐 겁나는 한국의 정치
  • 승인 2018.04.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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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인터뷰 중에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거나,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비원에게 “넌 또 뭐야! 너 까짓 게!”라는 말을 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대한민국 제1 야당대표의 수준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자신의 비서관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괘념치 말거라”라는 메시지를 남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기사를 볼 때는 ‘제발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이런 기사는 못 봤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한다. 하루 이틀 얘기도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는 한국의 아이들에게 알려주기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

엄마, 아빠가 대한민국의 유권자인 게 뿌듯한 때도 물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갈 때는 추위에 떠는 아이에게 ‘좋은 나라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알려주기도 했고, 국민의 힘으로 잘못된 정권을 끌어내릴 때는 ‘이게 바로 민주주의 힘’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그 기억을 채 다 잊기도 전에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고 우리는 또다시 형편없고 수준 낮은 한국정치의 민낯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며칠 전 아이가 늦은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잡음 때문에 시끄럽다’라는 내용의 신문기사를 읽고 있었다. 신문을 읽는 나를 본 아이가 “뭐 읽고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아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금이 선거 전에 공천을 확정하는 시기인데 그것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공천이란 일반적으로 정당이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자신의 당을 대표할 후보를 공천하는 중’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 정당이 공정하게 공천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공천무효를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무소속으로 나오기도 하는 등 잡음이 많다는 기사내용을 읽어주는데 딸아이가 대뜸 “왜 공정하게 공천하지 않는데?”라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들은 왜 공정하게 공천하지 않는 것일까? 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고 나라의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뽑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뽑는 것일까?

나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 그건 자기들에게 유리한 사람을 뽑으려는 거지”

딸은 사춘기 아이답게 바로 다시 물었다.

“그 ‘자기들’이 도대체 누군데?”

나는 당대표나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 같은 말은 빼고 그냥 “높은 사람들이지 뭐”라고 얼버무렸다.

딸은 어이없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시장 뽑고 구청장 뽑는데 높은 사람이 찍으면 그냥 후보가 된다는 거야? 우와! 대단하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선생님은 후보추천 못하는데, 진짜 오지네(청소년들이 쓰는 속어로 ‘대단하다’라는 뜻).”

이렇게 말한 아이는 대단히 흥미롭고 한심한 일을 알게 되었다는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쫓아가서 무언가를 더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특별히 틀린 말도 없어서 그냥 신문을 펴놓고 앉아있었다. 이따위 정치수준밖에 말해줄 수 없는 것에 심하게 쪽팔려하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열심히 공부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은 살게 된다고도 말한다. 그 말에는 ‘네가 살아갈 세상은 노력에 따라 더 나은 삶이 주어지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곳’이라는 전제가 있다. 이 세상이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공정한 룰은 유지되는 나라니까 너도 그 룰 안에서 열심히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지역예산을 결정할 시장이나, 그 예산으로 일을 시행할 구청장을 공정하게 뽑지 않는데 도대체 아이들에게 무슨 염치로 공정한 경쟁을 말한단 말인가?

제발 당대표 눈에 들었다고 공천주고, 국회의원한테 줄 잘 섰다고 공천하는, 이런 염치없고 쪽팔린 짓 좀 그만두자. 한국의 아이들이 한국의 정치를 제대로 알게 될까봐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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