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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결혼이야기

졸혼

기사전송 2018-01-25, 21: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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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리스토리 결혼정보 대표)


부부가 이유 없이 상대방의 얼굴이 보기 싫고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토요일 아침에 방문한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의 얘기를 할까 한다.

오랜 만에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밀렸던 집안 청소를 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했다. 화장실 청소, 얼룩진 유리창 닦기, 냉장고 안 정리 등 눈에 거슬리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어쩌다 한 번씩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르는 터라, 단골 가사도우미가 우리 집에는 없다. 그래서 새로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르기로 했다. 한참 후에 도착한 아주머니는, 지하주차장이 넓어서 아파트 동 호수를 찾지 못해 헤매고 다니느라고 늦었다고 변명 했다.

오십 대 중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세련된 모습이다. 자태도 곱고 힘든 일을 할 분 같지 않아 보였다.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아 궁금했다.

차를 한잔 하면서 자연스레 그녀는 자신의 사정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남편의 지나친 애착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신혼 초에는 그런 남편의 행동이 사랑인 줄만 알았다.

직원을 몇 명둔 사장인 남편은 제법 능력도 있고 성실한 남자였다. 회식 날에는 부하직원들에게 케이크를 사 주며,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들에게 선물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물론 본인도 일찍 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누가 보아도 가정적이고 착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남편을 보며, 언젠가부터 아내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아내가 친구나 친정식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싫어하고, 오직 남편만을 쳐다보기를 바랐다.

어쩌다 아내가 친구를 만나고 오면 남편은 꼬치꼬치 캐물었다. 시간이 흐르자, 남편의 행동이 사랑을 넘어 집착으로, 아니 의처증으로 치달았다.

남편이 가까이 오는 것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 되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린아이들이 눈에 밟혀 이혼이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운전 중에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치받쳐 올라 병원에 갔다. 다행히 뇌졸중 초기였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병상에서 그녀는 지나온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에겐 인간적으로 미안했지만,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남은 인생은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 다 성장한 자녀들에게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상의했다. 얘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기에 자녀들은 이혼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과 별거하는 조건으로, 전셋집을 얻어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그녀가 선택한 직업이 가사도우미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단다. 우울증 증세도 없어지고, 마음은 편해서 체중도 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리라. 요즘 일본 중년 여성들은 졸혼이 대세라고 한다.

졸혼의 사전적 의미는 ‘결혼을 졸업 한다’라는 뜻이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기코의『졸혼을 권함』은, 한동안 그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래서 중년의 남자들은 위기를 느낀다.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 서로 맞지 않는 부부는 불행하다. 하여, 퇴직 후 전원생활을 원하는 남편, 도시에서 영화나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 아내는, 각자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요즘 드라마에 ‘밥상 차리는 남자’ 가 인기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성격에 억압된 삶을 살아온 중년의 여인이 갑자기 졸혼을 선언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의 내조와 보살핌을 받고 살아온 중년 남성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자신의 밥상을 차린다. 아내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라고 외치며, 홀로 행복한 삶을 선택한다. 결국 그들은 홀가분한 이별의 소주잔을 맞댄다. 유교사회의 급속한 몰락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선명한 여성들의 등장을 불러왔다.

어쩌면,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혼’보다, 졸혼이, 더 나은 선택지인지 모른다. 물론 다복한 가정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궁극으로 지향해야할 유토피아임엔 틀림없다. 반면, 대쪽같이 부러지는 결혼보다 휘어질 줄 아는 졸혼도, 하나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자문자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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