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의 나라
사돈의 나라
  • 승인 2018.06.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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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결혼정보 대표)




베트남 하이퐁 캇비 국제공항에 연보랏빛 서양 장미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서, 두 젊은 여성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정색 바지와 하얀 티셔츠의 단아한 차림이다. 석달 전에 결혼한 S씨의 신부와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신부의 엄마다.

S씨의 신부는 지금 베트남에서 한국어 공부중이고, 비자가 나오면 한국에 올 수 있다. 신부의 엄마는 딸이 한국 가기 전에 한국의 사돈을 베트남으로 초청했다. 그래서 S씨의 부모님은 베트남 초행길을 우려해서 우리 회사의 이번 맞선일정에 나와 함께 동행했다. 공항에서 신부는 남편을 보자. 조르르 달려가서 반갑게 포옹을 했다. 처음 만난 시부모님께도, “아버지 어머니, 안녕 하세요?”라며 수줍게 인사를 했다. 오십대 중반의 한국 사돈과 젊은 베트남 안사돈은 목례를 하며,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베트남 신부엄마의 꽃다발 선물에 한국사돈도 환한 미소로 응대했다. 베트남 안사돈의 센스가 돋보였다. 두 사돈은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이미 몇백년 전에 예약된 만남인가.

13세기말, 고려 고종때.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리 왕조가 왕위 찬탈을 도모하기 위한 왕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막내왕자인 이 용상이 보트피플로 황해도 옹진반도에 정착했다. 고종이 왕자 이 용상이 몽골군을 물리친 것을 어여삐 여겨, 화산 이씨로 봉하고, 옹진에서 살도록 해주었다. 화산 이씨의 시조는 베트남의 리 왕조이다. 베트남과 한국은 혈맹으로 맺어진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은 문화와 정서가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장남이 부모를 모시고 대가족이 함께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걱정해주고, 기꺼이 도와준다. 가족 친화적이다. 우리나라의 예전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정감이 간다.

최근에 다문화 혼인건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중국을 제치고 베트남 혼인은 증가 추세로 1위다. 국제결혼을 많이 하는 지역은 동네가 빛이 나고, 번듯한 새 집들이 들어선다. 야자수가 있는 넓은 마당에 양어장인 호수를 낀 주택은 초원 위의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나라 전원주택 단지처럼 풍광이 낭만적이다. 집안에는 텔레비전·냉장고·세탁기가 대부분 갖추어져 있다. 요즘은 결혼을 하면, 신부의 부모님들이 초청을 받아서 한국에 와서 돈을 버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돈보다 대부분 젊은 베트남 사돈들이 한국에 와서 사돈댁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일손이 부족한 농번기에 젊은 사돈들이 과일농사며 밭일을 거들어준다. 한국사돈도 고마운 마음에 사례를 한다. 양쪽이 모두 이득을 보고 덤으로 정까지 듬뿍 보탠다. 사돈끼리 돕고 정을 주고받으니, 자식들의 애정도 더욱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자식들의 맞벌이로 인해 외손주를 돌보는 베트남 사돈도 많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상 어디나 다 똑같은가보다. 지난 4월 2일부터 법무부는 손주 돌보는 결혼이민자 부모님의 한국 체류기간 연장을 허용했다. 결혼이민 자녀의 안정적 정착과 성장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외손주도 돌봐주고, 사돈댁의 바쁜 일손도 거들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S씨의 부모님이 베트남 사돈과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넣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S씨 어머니의 목소리가 무척 경쾌했다. 베트남 사돈의 배려로 택시를 대절해서 시내 관광도 하고, 호텔에서 아들 내외와 하룻밤 잤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베트남은 일억 이상의 젊은 인구가 많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역동의 나라이다. 향후 5년간 제3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상생과 통합이 최우선 순위다. 베트남 신부를 돈 주고 사온다는 그릇된 편견은 이제 정말 버려야 한다. 국민 모두가 인식의 전환을 하고 상생 협력할 때, 진정한 사돈의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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