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바꾸고 싶은 열망…근대골목투어 개발
대구를 바꾸고 싶은 열망…근대골목투어 개발
  • 김기원
  • 승인 2013.10.1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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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이사

역사가 되는 모든 과정, 골목에서부터 시작

골목마다 스며들어 있는 대구의 역사 재발견

근현대 정체성 반영하는 핵심 공간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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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이사가 대구 중구 북성로 공구박물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패너 모형의 박물관 대문 문고리가 눈길을 끈다.
“공구박물관으로 오시면 어떨까요?” 인터뷰를 위해 약속 장소를 고민하던 찰나 권상구(39·사진) 이사가 기분 좋은 장소를 제안해왔다. 근대건축물을 원형 가까이 살려 지난 5월에 개관한 ‘북성로 공구박물관’.

대구 북성로가 전국 최대의 공구거리였다는 상징을 두기 위해 주변 공구상회들로부터 기증받은 2천여점의 공구로 가득 채웠다는 그곳이다. 이 박물관 개관은 그의 거대 프로젝트 중 일부다. 그는 ‘대구근대골목투어 창시자’로 대구 관광에 아주 진한 획을 그은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대구를 재발견한 것.

대구를 새롭게 발견할 수 밖에 없었던 권상구 이사의 ‘내 사랑 대구 스토리’를 들어봤다. 촉촉한 단비가 지나갈 무렵, 북성로 공구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특유의 쇠 냄새가 진하게 코를 파고 들었다. 그 시대 공구거리의 호황을 말해주는 영수증, 가계부 등이 널브러져 있는 작업실,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스패너. 이 모든 것들이 그 시대 우리의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박물관을 찾아오기는 권 이사도 마찬가지다. 연구소에서 업무를 보다 막 도착한 그는 바지를 둥둥 걷어 올려 입고 새빨간 가방을 어깨 한 쪽에 걸쳐 매고 있다. 남다른 패션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런데 그의 패션은 딱딱한 정장 차림의 소위 ‘이사님 패션’ 이상으로 감각적이었으며, 그의 패션 센스처럼 대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도 남다를 것이란 생각이 자꾸 밀려왔다.

박물관의 2층은 그때 그 시절처럼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애완동물로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천방지축으로 박물관을 누비고 있다. 권 이사는 “앞으로 이 아이들(고양이)이 박물관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거에요. 진짜예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2층은 나무로 된 작은 상이 하나 있을 뿐, 아무 가구도 없는 빈 공간이지만 유리창 너머로 들리는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이 방을 꽉 채우는 느낌이다. 한쪽 벽과 그 맞은편에 있는 벽 전체가 큰 유리창으로 돼 있어, 대구의 도심에 있는 공구거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높고 세련된 건물들이 아닌 나지막하지만 촘촘히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건물들이 참 인상적이다.

◇‘대구 토박이는 대구를 잘 몰라’ 이게 바로 ‘대구 사람’

“대구 여자들이 미인인 이유는? 전국에서 대구만 유일하게 ‘따로 국밥’이 있는 이유는? 대구 사람들이 땅콩을 삶아먹는 이유는 알고 있나요?” 권 이사는 다짜고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구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알고 있느냐는 공통된 질문이었다.

미인인 이유는 사과와 돼지껍데기, 따로국밥이 있는 이유는 6·25 당시 피난 온 사람들 가운데 양반과 서민들의 음식을 구분 짓기 위한 문화의 일종이었다는 것으로 답을 지었다.

권 이사는 “모든 것에는 근거가 있기 마련”이라며 “대구 토박이면서 대구를 모르는 게 진짜 대구사람”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구는 구한말 약령시, 서문시장 등을 중심으로 엄청난 범위의 전통시장이 형성되면서 상업인들이 주를 이룬 대표적인 상업 도시예요. 북성로, 태평로, 교동 일대 전부가 도시의 시간 궤적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죠. 특히 이런 시대를 살아온 대구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동선이 매우 넓은 사람들이죠.”

그는 “‘됐나. 됐다’라는 짧은 말 언어 습관도 오랜 시대 속에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혀 있다고 볼 수 있죠. 하나의 역사적인 시대상이 그대로 내려 온 거죠”라며 ‘대구 스타일’을 풀어놨다.

또 “전쟁의 포탄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도시였던 대구에서는 수많은 지역의 피란민들이 몰려들었죠. 그때 그 시절 꽃피웠던 경제, 문화, 예술이 대구역 주변 향촌동과 화전동 등에 강한 체취로 남아 있죠”라며 “정말 멋진 도시지 않느냐”고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대구’라는 도시 공간을 자체 그대로 생각하고 품어 느끼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시에 대한 생각, 이어진 생각

‘대구 토박이’인 권 이사는 대학생 시절 영자신문사, YMCA, NGO 등 전국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했었다고 한다.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죠. 자연스럽게 시민 단체들과도 친분이 쌓였고, ‘소셜 디자인’이라는 연장선상에서 많은 생각들을 꿈꾸고 또 다른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던 것 같아요.” 그는 그당시 마음맞는 친구들과 함께했던 ‘가장자리’라는 동아리를 소개하면서, 좀더 도전적인 욕심을 부리게 됐었던 전환점으로 꼽았다.

“사회적인 고민, 변화 등 함께 꿈꿨고 추구했던 동아리죠. 하지만 회원들이 졸업을 앞두고 대부분 서울로 취직을 하면서 저에게도 변화가 시작됐죠. 친구가 저에게 말했어요. ‘너는 왜 대구에 있니’라고. 대구를 떠날 이유가 마땅히 없었던 저에게 크게 와닿았던 질문이에요.”

그는 국제문제전문가를 꿈꿨던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전지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국제컨퍼런스들이 서울에만 몰려있는 것에 대해 강한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서울과 대구를 오고가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어느 순간부터 ‘서울바라기’라는 서울지향적인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당장 모든 걸 그만뒀죠.”

◇대구에 있는 이유

“구석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없나요?” 그는 되물었다.

그는 “선배들과 우연히 약령시 근처를 지나가다가 선배가 한 집을 가르키며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한약방’이라고 별뜻 없이 말해줬는데, 전 그 순간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교과서에만 보던 100년 전의 역사인 동시에 실제로 ‘현장에 있는’ 그 역사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됐죠.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감흥이라고 해야되나.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게 감흥을 받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약방은 아주 작고 곧 무너질 것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광복 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감정기라는 시대를 위장으로 덮고, 우리는 해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포장하려 해요. 하지만 식민지 이후 남겨진 것들을 ‘있는 사실 그대로’, ‘원형 그대로’ 유지해 역사적 사실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기획하고 싶었어요.”

그가 말한 구석은 ‘골목’이었다. 친구들이 떠나야만 했던 대구를 다시 모일 수 있도록 새롭게 살리자는 취지도 한몫 거들면서, 2009년 대학 졸업 작품으로 ‘골목 프로젝트’에 발을 들였다.

“100년의 시간이 흘러 생활이 역사가 되는 이 모든 과정이 우리 골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될 필요가 있죠. 골목이란 장소가 주는 공간은 사람이 만나고, 건물이 만나고, 문화가 만나는 곳이니까요”라며 힘줘 말했다.

이어 “논과 논의 경계인 논두렁에서부터 ‘골목’이 생기게 되죠. 대문을 열고 나오면 우리는 ‘골목’과 마주하게 됩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가 가득한 곳이 바로 골목부터 시작되는 셈이죠”

◇대구의 역사와 마주하는 ‘골목’

권 이사는 ‘골목이란 모순의 결집’이라고 말했다.

“골목은 시골 논두렁이 좁혀져서 생기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곡선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골목들이 사라져가는 가장 1차적인 이유는 차가 많아지면서, 차가 못 다니게 되고, 소방도로도 만들게 되고…도시 경관적인 부분을 볼 수 있죠.”

대구시 중구에 있는 이상화 , 현진건, 이육사 등 대표적인 역사 인물들은 말 그대로 골목을 통한 한 공간에서 역사와 현재를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골목마다 스며들어있는 역사의 기억들은 지난 2003년부터 거리문화시민연대와 대구자원봉사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대구근대골목투어’로 시작, 2007년 대구신택리지가 발간되면서 10여개의 워킹투어 프로그램으로 확대됐다.

“대구를 바꾸고 싶은 타임라인이 생기게 됐어요. 근대 지식인들이 정재하던 장소들, 멋쟁이가 활보했던 대구의 시내. 저는 그 시대의 문화성, 장소성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갔을 뿐이에요.”

권 이사는 “길이 끝나는 곳에 또 다른 길이 시작되고, 이것은 과거를 걸어야 닿게 되는 ‘미래의 길’로 도시를 걸으면서 생각의 여유를 찾아주는 ‘걷는 여행’을 꿈꿨다”고 말했다.

대구의 근현대 정체성을 반영하는 핵심 공간으로 근대골목투어가 자리잡히면서 2007년 중구청은 공공디자인계를 신설, 2008년 도심재생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2009년 국토해양부의 ‘살고싶은도시만들기 시범 사업’에 선정되면서 근대골목 전반에 환경 개선과 함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어 2010년 근대골목에 위치된 주요 근대건축물에 야간경관 시설을 설치, 야간투어도 가능하게 됐으며, 2012년 ‘계산예가’ 조성 등 관광콘텐츠를 확대하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99곳’에 선정된 대구근대골목투어는 지금까지 찾은 관광객 수만 6만1천여명에 이른다. 올해는 20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 근대골목에 이어 읍성골목의 북쪽 지역으로 경관사업이 확대되면서 대구시, 중구청 등 기관들과 북성로 및 서성로를 중심으로 ‘대구읍성길상징거리 조성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북성로’ 중심의 젊은 커뮤니티

열어둔 창문으로 흘러드는 북성로의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인터뷰 도중 관람객이 “건물 모양이 특이해서 들어와봤다”며 박물관 한 바퀴를 둘러봤다. 관람객은 일본식 건물을 그대로 살려놓았다는 설명을 들은 후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신기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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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공구박물관 내부 전경(사진 아래)과 공구박물관 2층 다다미방 모습(사진 위).
사실상 공구거리 일대에 있는 대부분 건물들은 다다미방이 있는 일본식 건물 형태를 그대로 갖고 있다. 권 이사는 “지난 2001년부터 10년 동안 도시 변화를 위해 근대골목투어 프로젝트를 실시했다면, 2011년부터는 북성로에 ‘건축’을 매개로 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데, 그 중 첫 시도가 바로 ‘공구박물관’”이라고 소개했다.

왜 북성로로 정했냐는 질문에 숨도 쉬지 않고 “어른들이 버린 곳이니까”라고 바로 답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 속 일본이라는 국적을 떠나 현재 빈 집도 많고 건물의 공간 활용도도 뛰어나 새로운 보금자리로서 탁월했고, 뻥 뚫린 듯한 경관은 덤으로 얻어낸 보석이었어요”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근대건축물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건축물이 지닌 장소성, 건축형태적인 특수성에 부합하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북성로의 상권을 활성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어요”라고 했다.

그는 북성로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꿈의 영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고담도시, 무능력한 도시 등 대구 앞에 붙은 수식어는 많죠. 앞으로 대구의 미래 정체성이 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를 만들고 싶어요. 바로 젊은 친구들, 즉 ‘창의 인력’들이 인생을 시험해볼 꿈의 영토로 이곳은 안성맞춤이죠”라며 “현재 카페 ‘삼덕상회’, 자전거수리소 ‘장거살롱’,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 등 사회적 기업 성격을 띈 도전적인 젊은 친구들이 만든 공간들이 북성로로 모여들고 있어, 북성로의 앞날이 점점 기대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바늘부터 탱크까지 다 있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까지 만든다’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놀라운 기술력을 가졌던 ‘북성로’. 이곳 가장자리에 공구박물관이 우뚝 솟아 있다.

권 이사는 공구박물관에서 기증 받은 공구 물품들로 진짜 탱크를 만들어버려, 웃지 못할 우스개 소리로 만들어버린 적도 있다. 그는 “탱크 만드는 게 시간이 걸려서, 개관도 늦어졌어요. 엄청 힘들었죠”라며 탱크에 대한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

권 이사는 공구박물관을 나와 문을 걸어 잠그며, 대구사람들이 왜 땅콩을 삶아먹는지 그 이유에 대해 “부모님께 여쭤보세요”라고 하고는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았다.

약력
(사)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중구도시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
대구근대골목투어 개발자
2001 대구문화지도 제작
2002 대구골목문화가이드북 제작
2003 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2007 대구신택리지, 대구식후경 집필
근대골목디자인개선사업 연구위원
동성로공공디자인개선사업 문화전략팀장

김지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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