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인성 동시에 실현
학력·인성 동시에 실현
  • 남승현
  • 승인 2014.06.2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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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장 이태열

2008년 조암초 초대교장 부임

창의·사고력 키워주는 서술평 평가 도입

학업성취도 결과 기초학력미달생 ‘제로’

교내서 다양한 동·식물 기르며 인성 순화

서로 이해·존중…학교폭력 ‘제로’ 실현

교사 위한 ‘에듀힐링’ 프로그램 개발

학교폭력·교권침해 등 스트레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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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6년부터 지금까지 교육 현장에 몸 담으면서 선생님과 학부모는 물론, 교육행정가의 입에까지 전해지는 ‘신화’에 가까운 성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인물이 있다. 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장으로 있는 이태열(60) 과장. 이 과장이 교장으로 재직할 때 500명의 학생들이 전학을 온 것은 지금까지 교육계에서 회자되는 전설적인 얘기다.

◇교장 선생님을 따라 온 500여명의 전학생

지난 2010년 개교 후 불과 1년 6개월 만에 조암초등학교는 ‘인성과 학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었다.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신뢰가 싹트게 됐고, 급기야 다른 지역에서 학생들이 몰려 36학급에 학생 수가 1천470명으로 늘어나 포화 상태가 됐다.

이 과장은 “학교주변 아파트에는 빈 집이 없었고, 인근 아파트는 전세라도 오기 위해 2~3개월 정도는 기본으로 예약해 대기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아파트 전세 값이 오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며 멋쩍어 했다.

당시 조암초 각 학급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던 학생은 40명을 넘을 정도였다. 이처럼 과밀학급이 되자 대구시교육청은 인근에 대구월암초등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암초등학교에서 월암초등학교로 옮기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라도 이 교장이 있는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내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후 월암초등학교는 6개월 동안 개교를 미뤄야 하는 웃지도 못할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시교육청은 이례적으로 이 과장을 조암초등학교장에서 월암초등학교장으로 전보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때가 2011년 3월. 월암초등학교 초대 교장 자리에 오른 이 과장을 따라 조암초등학교 학생 500여명이 학교를 옮겨오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됐다.

◇학력과 인성, 기본에서 해답을 찾다

이태열 과장은 지난 2008년 9월, 달서구에 새롭게 갖춰지기 시작한 주거단지에 세워진 대구조암초등학교에 초대교장으로 부임하게 된 때를 잊지 못한다.

이 곳에서 이 과장은 교육 현장의 놀랄만한 사실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장은 “학부모 대부분이 자녀가 시험 문제의 정답만을 맞히는 데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며 “학생들은 지식을 외우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고, 심지어 교사 역시 1960년대 수준과 다름없는 4지 선택형 및 단답형 평가를 고수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개교 한 달 뒤 치른 중간고사에서 모든 학년의 성적 평균은 무려 85점에서 95점 사이였다. 전교생의 70% 정도가 100점을 얻었다. 하지만 이 과장은 소위 ‘올백 병’에 걸린 듯한 이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평가 방법을 뜯어고친 건 이 때문이었다.

그는 “단편적으로 단순히 암기해서 얻은 지식으로는 진정한 학력을 갖추지 못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 생각을 학생과 학부모, 교사에게 설득시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학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회 등을 통해 교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창의성과 표현력, 논리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등을 총체적으로 길러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골자였다.

이후 교사들과 함께 서술형 평가의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평가방식은 이랬다. 우선 시험지만도 8절 크기로 5~6쪽에 달했다. 주관식과 객관식의 비율이 8대2인 전혀 다른 시험이었다.

또한 듣기 시험의 제시문과 지시문, 사례문 등은 각 교과의 수업목표와 맞도록 하되, 교과서가 아닌 동화 등에서 접할 수 있는 글을 사용했다. 그리고 문제 해결 과정을 교사가 확인할 수 있는 문제를 냈다. 과정을 평가해 부분 점수를 주도록 한 것이다.이러한 ‘생소한’ 평가의 결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첫 시험 결과, 100점에 가깝던 학생들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평균이 60점대에 불과한 학년이 나올 정도였다. 학생들이 이제까지 진짜 100점짜리 지식을 함양했다는 것이 아니었으며, 100점은 학생의 진정한 학력이 아니라 단순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 과장은 “새로운 평가의 도입에서 학부모로부터 우리 학교만 전혀 다른 잣대의 평가를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냐, 남들이 공부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배우게 되면 오히려 학력이 처지는 것이 아니냐 등의 강한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며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2009년 개교 이래 실시돼 온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매년 기초학력미달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로 발표되면서 학부모가 안심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학생들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으며, 토론과 논술 등 다양한 활동 중심의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학원에서 미리 학습한 내용을 쉽게 확인하기에 급급한 ‘지루했던’ 학교 수업은, 문제해결의 과정까지 평가하는 평가 방식의 변화로 인해 수업에 열중하는 교실을 만들게 됐다.

학원에서 단순히 문제집만 풀고, 암기해서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는 학원을 맹신하지 않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교육을 줄이는 효과까지 불러 왔다.

교사 역시 교과서에서 해방되어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수준에 대해서 더욱 집중해서 연구하고 가르치게 되었다. 과정 중심의 평가가 도입되면서 수업의 과정 역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평가가 바뀌면서 교수·학습의 방법이 모두 바뀐 획기적인 계기가 된 것이었다.

학력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이 과장은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하게 됐다.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공격적이고, 학업, 가정 문제 등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으며, 배려심이 부족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어린 학생들은 인성에 크고 작은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에 이 과장은 학생들의 인성이 바로 서야한다는 사명감 아래 전원학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들의 인성을 순화하고, 남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심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모든 학생들은 1인 1화분에 여러 가지 식물을 가꾸면서 생명 존중심을 키우는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했으며 수수, 목화 등을 재배하고 토끼, 닭 등의 작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전원을 체험하기도 했다. 이 교장의 정책으로 인해서 학교폭력 제로(0) 학교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에듀힐링으로 지친 선생님들 일으키다

학생을 몰고 다니는 ‘화려한’ 전적을 뒤로 하고, 이태열 과장은 지금의 대구시교육청 교원능력개발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후 이 과장은 지친 교사에게 눈을 돌리게 됐다. 지난 2012년 학교폭력과 학생자살, 교권침해 문제를 접하면서 학생 못지않게 일선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다. 그는 “그동안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학생들을 중심으로 문제만 해결하는 데 집중했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의 교직 피로도가 높아져 종종 학교폭력의 문제가 교권침해로 이어졌던 게 사실”이라며 “교사로서의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스트레스는 갈수록 커졌다. 심각한 경우,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역량이 심하게 떨어져 일선 현장에서 학교폭력이 이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교직 스트레스와 교권침해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교사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해주기로 결심했다.

당시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처음으로 ‘에듀힐링’이라는 치유프로그램을 개발돼 그해 9월부터 운영하게 된 배경이다. 에듀힐링은 위기 교원의 체계적인 관리 및 지도를 위한 ‘진단-상담-치료’의 원스톱 지원 시스템으로 도움이 필요한 교사들에게 제공하는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에듀힐링의 각 과정은 매년 대상을 늘려, 올해 현재 유·초·중·고교 및 특수학교의 교원 및 교육전문직 전체와 교육행정직 대상까지 확대된 상태다.

이태열 과장은 “참여 교사들의 호응이 상당하다. 날이 갈수록 연수를 희망하는 교사 역시 늘고 있다”며 “에듀힐링 프로그램은 현재 전국의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도 벤치마킹해 교사 치유형 연수 과정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렵사리 잡게 된 교편, 솔선수범의 자세로

1954년 5월, 달성군 유가면 음리에서 태어난 이 과장은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의 가난 속에서 자랐다.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현풍고등학교에서 그는 현재의 대학수학능력평가인 예비고사를 치르지 않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안 가도 좋으니 예비고사를 반드시 치르라’며 격려한 그의 담임교사, 이후 시험에 합격했지만 대학에 갈 생각을 못하고 방황하던 그에게 등록금이 거의 들지 않고 2년 동안 다니며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교육대학을 소개한 이웃에 살던 경찰관. 이들 덕분에 이 과장은 대구교육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태열 과장은 지난 1976년 10월, 2년 동안 교사임용을 기다리며 막노동판을 전전하다가 교단에 들어서던 그 때의 감정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다.

그는 “아직 막노동꾼의 행색을 벗지 못한 자신을 ‘우리 선생님’이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을 잊지 못한다”며 “이후 교직을 천직으로 삼고, 앞으로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만을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성실과 솔선수범이 자신의 삶의 원천이라 말한다.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은 지 38년 동안 한결 같이 지켜온 업무상 신조는 ‘솔선수범’이다. 어떤 일을 지시하면 성과도 빠르고 쉬운 일이지만, 스스로 하게끔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조암초와 월암초에서 신설학교를 함께 꾸렸던 교사들이 지금도 그를 ‘교장 선생님’으로 부르며 따르는 것은 이러한 리더십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는 2016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이 과장은 퇴직 후에도 교육과 맞닿은 길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다짐에서 대구교육의 희망을 발견해 본다.

남승현기자 namsh2c@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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