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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인터뷰

<와이드인터뷰> 문화人 개그맨 전유성

기사전송 2012-11-07, 09: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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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것들은 불만에서 탄생
지나가다 예쁜 교회 보여 청도에 철가방 극장 세워
개그맨 꿈꾸는 후배에 기회 2기28명 합숙하며 활동중
어린아이가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성악가들이 가요를 부르고, 개나 소와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콘서트. 부산이나 서울에서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공연장인 청도로 오기 힘들다며 그들만의 전용 버스를 운행하는 콘서트.



사람들은 기상천외하다고 하고 기발한 생각을 하는 그를 기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불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왜 아이들이 콘서트에서 뛰어다니면 안 되고, 왜 동물도 가족인데 그들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 안 되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는 그는 청도의 휴머니스트 개그맨 전유성이다.



전유성씨는 후배 사랑에 대해 '돈 없고 빽 없는 끼있는 후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은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그와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마디가 들려온다. “남들 다 묻는 시시한 것 묻지 말고 신선한 질문 가지고 오세요, 남들과 똑 같은 질문 하시면 대답안합니다.” ‘어이쿠 큰일이네.’ 소심한 성격에 가슴이 묵직해온다. 곁에 있던 동료가 거든다. “그 사람 질문 잘못하면 욕도 한다던데, 큰일 났네.” 쿵..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또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에게 신선한 질문은 뭘까. 나도 기발한 질문을 해야 하나. 그러다 신발짝이라도 날아오면 어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연신 인터넷을 뒤진다. 신선한 질문을 하려면 그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시간을 인터넷 속 그와 만났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도 당연한 것을 지금까지 소홀히 했구나.’ 반성하며 왠지 그에게 한 수 배운 듯 한 생각에 웃음이 픽 났다.



그가 청도에 와서 했던 공연들, 하고 있는 일들을 쭉 찾고 공부하면서 그 모든 것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의 마음이 보였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랑이었다. ‘아! 그는 천재도 기인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도 아니었구나. 그는 단지 휴머니스트였구나!’



제법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그를 만나기 위해 청도 행을 재촉했다.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키기 위해서다. 함께 가기로 한 일행이 집합장소에 십 분쯤 늦게 도착했다. 제 시간에 당도하지 못하면 어쩌나, 다급해진 마음으로 대구 시내를 막 빠져나가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황 기자, 청도역에 갑자기 누가 온다고 해서 픽업하러 갑니다. 30분만 늦을게요. 극장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긴장이 조금 풀렸다. 30분을 벌었다는 느긋함과 ‘이 사람 생각보다 예의가 바른 사람이네’ 하는 약간의 안도감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극장에 도착해 휴게실 창으로 들어오는 청도의 눈부신 가을 풍경에 넋이 빠져 있을 즈음, 구겨진 난방과 면바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시골 농부 차림의 낯선 그가 도착했다. 왜 늦었는지 또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편안하고 예의바른 그의 모습에 긴장이 녹아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왠지 그의 모습을 보며 편하게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십니까. 선생님은 기인이십니까. 천재이십니까.’ 첫 질문을 던졌다. 그가 대답한다. “그 질문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 아시죠.” 그의 실망스런 반응을 보고 한마디 덧붙였다. ‘선생님의 모든 기발한 아이디어 속에는 휴머니즘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휴머니즘은 어떤 것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어. 그런 소리 처음 들어보네. 나는 그런 것 잘 모르겠고 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것들은 모두 불만 때문에 나온 것들입니다. 왜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공연을 보면 안 되고, 공연을 보다 잠이 오면 왜 자면 안 되는지, 내게는 그런 것들이 불편함과 불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걸 고쳐보자는 생각에 색다른 공연들을 만든 것 뿐이지요.”



하지만 그의 생각에 사람들이 동조하고 찾아오지 않으면 공연은 실패한다. 물론 그야 공연의 성공과 실패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니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일 터다. 하지만 그가 기획하는 공연들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든다. ‘얌모얌모 콘서트’도 벌써 1천회를 넘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그런 공연에 목말라 있었다는 얘기다. 역시 그는 천재인가. 그가 천재라는 말을 내켜하지 않으니 휴머니스트라고 하자. 그것 역시 그다지 동조하지 않겠지만.



‘얌모얌모 콘서트’는 가족 3대가 웃고 즐기는 클래식 음악회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회와는 차별되는, 공연 중 재미와 재치가 묻어나는 웃음이 있는 클래식 공연이다.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 멀리할 수밖에 없었던 클래식 공연을 클래식 음악회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상천외한 요소를 가미해 부드럽고 재미있게 만든 콘서트다. 물론 관람 형식은 자유롭다.



가족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도 드물고, 특히 클래식은 어린 아이들이 자유롭게 관람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은 아니었다. 이미 1천회를 넘겼다고 하니 이만하면 삭막해져가는 가족애를 돈독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클래식의 대중화에도 기여한 셈이다.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세계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 공연을 그가 해낸 것이다.



그가 반문한다. “클래식 공연장에 얘들 데리고 온 가족이 가서 편하게 보면 얼마나 좋은가? 가족의 해체니 뭐니 하는데 3대가 그렇게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모습,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내친김에 성악가가 가요를 부르는 콘서트도 열었다. 일명 ‘개그맨 전유성의 성악가가 부르는 가요 60년’이다. 지난달 19일에 경주에서 열려 대성황을 이뤘다. 반응이 너무 좋아 대구 천마아트센터에서 2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성악가들이 흔쾌히 참여 했는지 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이 공연의 시작이 ‘성악가들이 노래방에 가면 어떤 노래를 부르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들 중에는 클래식을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성악가들이 대중가요를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모티브로 이 공연이 만들어졌지요”라고 했다. 그의 아이디어의 원천은 역시 사람에게로 향한 그의 마음에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불편함을 볼 줄 아는 그런 마음.



그가 또 말했다. “대중 예술이 됐든, 순수 예술이 됐든 구분하면 안 되죠. 대중이든 순수든 행위가 벌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왁자지껄 해야 합니다. 공연장이 텅텅 비면 제작자도 박살나고 출연자도 박살나고 사람들도 재미없어요. 그런 공연을 왜 돈 들여 해야지요”라고.



그는 내친김에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잠자는 콘서트’가 그것. 벌써부터 어떤 색깔의 공연이 나올지 기대 만발이다.



‘그는 휴머니스트다’라는 기자의 분석을 가장 뒷받침하는 공연은 역시 ‘개나 소나 콘서트’다.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기자로서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물과 함께 할 수 없는 사회적인 제약들 때문에 슬펐던 경험이 있기에 ‘개나소나 콘서트’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한 공연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가 애견가들의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공연을 만든 것이다.



공연은 매회 진화를 거듭하며 전국에서 애견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조용하던 청도 땅에 콘서트가 열리는 날은 그야말로 왁자지껄 그 자체다. 그날이 되면 청도는 유쾌하고 흥미롭고 행복한 땅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애완견 주인들을 자칭, 타칭 ‘엄마’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동물들을 ‘애’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애완견이 가족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들의 수난일인 복날에 동물들과 그들의 주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그가 만드는 클래식 콘서트에는 작지만 재미있는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출연자의 학력이나 경력에 출신 초등학교만 적는 것이다. 사람들이 꽤 재미있어 한다고 한다.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사건을 접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성악가들이나 연주자들의 학력이나 경력에 외국에서 공부하고 연주한 것들을 적으면 사람들이 괴리감을 느끼고 친근해하지 않아요. 초등학교만 적어놓으니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 같은 초등학교 출신들도 있고 해서 몹시 재미있어 해요.”



타칭 천재인 그가 내다보는 미래의 공연은 어떤 색깔일까. “이제는 동호회 개념으로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음악도 들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활동에 대한 정보도 곁들이는 그런 공연이지요. 담배 피는 사람들의 음악회나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의 음악회, 임플란트가 비싸다고 하는 사람들의 음악회, 원형탈모를 겪는 사람들의 콘서트를 하면서 그들의 관심분야에 대해 토론하고 전문가가 적절한 정보도 주는 그런 유익한 공연들 말이지요. 당연히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이지 않겠습니까.”



강원도 화천에 소설가 이외수가 있다면 청도에는 개그맨 전유성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이 두 예술가는 지역에서 상징적인 문화아이콘이 되고 있다.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물리적인 거리나 공간의 제약이 허물어진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하나의 단면이다. 콘텐츠만 있으면 어떤 오지에 있어도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대이고, 그 선두에 전유성과 이외수가 있는 것이다.



그가 청도에 정착하는 것을 보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가 얼마나 있을까, 조금 있다 가겠지’ 했는데 어느새 청도 주민이 다 됐다. 그가 청도에 정착한 계기도 그 다웠다. “그냥 지나가다 예쁘고 오래된 교회가 하나 보여서 이거다 싶어 정착했다”고 한다.



‘보수성이 강한 대구·경북에 텃새가 있을법한 골에서 어렵지 않았나?’는 질문에 “전국 어딜 가나 다 비슷하지요.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며 잘라 말했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다면 주위 환경에 크게 제약받지 않는 성격으로 느껴졌다.



청도의 문화아이콘인 그가 청도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을까.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그가 운영하는 철가방극장에 상시 공연을 보기 위해 청도 땅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화에 목말라 있던 청도 군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것이다.



청도에 있는 전유성의 코미디철가방극장.


물론 경제 유발효과는 덤이다. 철가방 극장 앞 시골동네에 철가방 극장의 공연을 보러 오는 관람객들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동네 부녀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동네 농부들이 생산한 먹거리를 식당에서 소비한다는 점도 이점이지만, 수입도 꽤 쏠쏠하니 일석이조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는 청도 곳곳을 둘러보는 사람들도 많은 점을 감안하면 경제유발 효과는 생각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성과는 청도를 전국에 알린 것이다. 이외수 선생이 강원도 골짜기 화천의 인지도를 전국적으로 끌어올렸듯이 경북의 작은 소도시 청도는 개그맨 전유성이 전국적인 홍보를 한 것. 개나소나 콘서트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청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문화가 먼저고 그 문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오고 그래서 캠핑장을 짓는 것이고 식당을 짓는 겁니다. 순서가 있는데 요즘은 테마파크라고 몇 백억씩 들여 지어놓고 사람들이 오지 않아 울상을 짓죠. 순서가 틀렸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사람들이 몰려올 문화콘텐츠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자유분방하고 괴팍할 것 같은 그의 이미지는 여지없이 깨졌다. 그는 꼿꼿한 원칙주의자였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더 없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원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원칙과 다르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질서를 지키는 그런 상식적인 것이다.



“나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요. 또 남들이 보든 안보든 무단횡단을 절대 하지도 않아요. 맛없는 음식점은 싸인을 하지 않아요. 맛 없는데 사람들에게 홍보가 될 싸인을 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는 언제 보자라든가 밥 한번 먹자고 했으면 반드시 지킵니다. 이런 것이 내 원칙이예요.”



그의 원칙은 후배사랑에도 배어 있다. 청도에 철가방극장을 마련해 개그맨을 하고 싶은 끼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지금은 2기 28명의 단원이 합숙하며 활동하고 있다. 벌써 3기를 모집 중이다.



1기 출신 중에 중앙에서 성공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말한다. “여기 출신이 성공하고 안하고는 신경 쓰지 않아요. 나는 단지 돈 없고 빽 없는 끼있는 후배들이 자신이 하고 싶을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은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예요”라며 “이것도 내가 뭐 후배 사랑이 대단해서 하는 건 아니예요. 만약 이홍렬이 했다면 나는 안 했을 겁니다. 근데 아무도 안하니까, 선배로서 누군가는 후배들을 이끌어 줘야 하니까 그 책임감 때문에 하는거죠”라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소외받았던 애견가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일부의 전유물인 클래식을 대중들에게 돌려주고자 노력하고, 단지 아무도 안하니까 자신이 하고 있다는 지극한 후배사랑. 누가 그를 기인이라고 했던가. 그는 기인이 아니라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황인옥 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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