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뜬지 오랜데…계속되는 ‘서문시장바라기’
마음 뜬지 오랜데…계속되는 ‘서문시장바라기’
  • 김지홍
  • 승인 2017.03.2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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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정치인들 방문 러시
▨서문시장 찾은 정치인
‘박근혜 시장’이라 불릴만큼
강력한 보수 지지 상징적 장소
朴 파면 이후 분위기 반전
홍준표·김진태·김관용 등
대권주자들 방문에 ‘싸늘’
정치인 발길 끊이지 않는 이유
‘지역 민심·경제’ 바로미터
朴 전 대통령 부녀로 이어지는
악수하는홍준표
서문시장 찾은 대권주자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삼남도지사가 지난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자유한국당 대선 예비후보인 김진태 의원이 20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문시장-김진태
서문시장 찾은 대권주자들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삼남도지사가 지난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 자유한국당 대선 예비후보인 김진태 의원이 20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누군데? 아이고 그만 좀 왔으면 좋겠다.” “우르르 몰고 댕기면 우야자는 기고. 미치겄네 진짜.” “우와. 오늘 또 오나. 식겁한다 진짜.”

지난 18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곳곳에서 상인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시장에 들어섰다. 홍 지사 지지자들과 카메라를 맨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시장은 말그대로 난장판이 됐다. 이 때문에 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시장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홍 지사는 이날 서문시장에서 5월9일 조기대선으로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했다. 시장 주변에는 경남에서 온 단체버스가 수십대 줄을 이었다. 홍 지사의 출마 선언이 시작되기 3시간 전인 이날 낮 12시부터 서문시장을 끼고 있는 신남네거리와 큰장네거리, 동산네거리 등은 극심한 교통 정체를 겪었다.

“진짜 선거철이네. 언제 다 지나가노. 서문시장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출발하려던 상인은 길이 막히자 아예 시동을 끄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상인들의 불만은 이틀 뒤인 지난 20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강원 춘천시)이 서문시장을 찾았을 때 폭발했다. 김 의원을 지지하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시장 입구를 막고 일부 시장 상인들과 싸움이 붙으며 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 상인은 “여기가 정치인들 놀이터도 아니고 뭐하냐 짓이냐”며 흥분했다.

조선 중기부터 ‘대구장’을 시초로 한 서문시장은 1922년 공설시장로 개설됐다. 조선시대부터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중 하나로 유명세를 떨쳤다. 현재도 서울 남대문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힌다. 서문시장(총 6만4천902㎡ 규모)은 1지구·2지구·4지구·5지구·동산상가·건해산물상가 등 6개 지구로 구성돼 있으며 점포 4천600개와 노점 1천여개가 있다. 상인 2만여 명에, 하루 유동 인구만 8만 명에 이른다.

서문시장은 ‘TK(대구·경북) 민심 바로미터’, ‘보수의 성지’, ‘보수 정치의 광장’ 등으로 불린다. 특히 과거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 때문에 서문시장은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지난 3월10일 헌재에서 파면된 뒤 ‘조기 대선’의 막이 열리면서 대구·경북을 찾은 대선주자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30일 서문시장 4지구에서 대형 화재까지 나면서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 앞두고 또 서문시장에 몰려드는 정치인들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이번 달에만 바른정당 남경필 경기도지사(3일), 자유한국당 김관용 경북도지사(14일·25일),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대표(15일),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16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도지사(1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20일) 등 6명이 대선 후보가 찾았다. 모두 과거에 새누리당에 몸 담았던 정치인들이다. 또 지난 1월에는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10일)과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19일),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20일)이, 2월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1일)가 서문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선 후보들이 이렇게 앞다퉈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 파면으로 사실상 ‘정치적 진공 상태’가 된 대구 중장년층의 민심을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김진태 의원은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서문시장을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도했다. 홍 지사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2017 대선주자 초청 특별대담에서 “박근혜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새롭게 우파들이 총 결집을 해서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때”라고 밝혔다. 그러자 김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 지사님은 며칠 뒤 대구 서문시장에서 출정식을 한다고 한다. 박근혜를 머릿속에서 지우려면 출정식 장소부터 바꾸고 하는 게 어떠냐”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홍 지사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경남도 서울본부에서 기자들을 만나 “대구 서문시장이 박근혜 시장인가. 걔(김진태 의원)는 내 상대가 안된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17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서민의 아픔과 상인의 아픔이 담겨 있는 서문시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서문시장은 ‘박근혜 시장?’

서문시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구 중장년층의 애정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4월 2일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정치적 위기나 중요한 순간마다 서문시장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고 있던 지난해 12월 1일 서문시장을 찾았다. 당시 35일 만의 첫 외부일정이었다. 그는 대통령 임기반환점(8월25일)을 돌았던 2015년 9월 7일에도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당 내부적으로 비박계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제18대 대선(2012년 12월 19일)에 출마한 그 해 9월 28일 서문시장을 찾았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맹추격으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던 상황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대 총선(2012년 4월 11일)을 열흘 앞둔 4월 1일에도 서문시장에 왔다. 새누리당의 낙하산 공천으로 대구의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 상황이었다. 그는 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을 앞둔 4월 1일에도 서문시장을 찾았다. 같은 해 3월12일 국회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로 탄핵 역풍이 불던 때였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서문시장 상인들 반응은 싸늘

하지만 서문시장 상인들의 정치적 입장은 예전 같지 않다. 노점에서 옷을 파는 상인(61)은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올해는 더 심하다. 장사에는 아무 도움을 안 주고 인사만하고 지나가면 뭐하냐. 한번 쓸고 지나가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2지구 1층에서 침구류를 파는 상인은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악수하고 다니면 앞뒤로 치이고 멈춰서서 밀려다닌다. 물건을 사러온 손님이 아니니까 장사를 아예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어느 정도껏 와야지 도와주는 것도 없이 사진만 찍고 간다”며 손을 내저었다. 국수 가게 주인(55)은 “선거철에만 반짝이고 선거 지나면 우리 존재는 없어진다. 속는 것도 한두 번이지”라며 “오는 사람마다 정(情) 줄 필요 없다”고 말했다.

김영오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은 “서문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간 장소”라며 “대선 후보들이 서문시장을 찾아 시장이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상인이나 손님들이 피곤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부정적인 여론이 일면서 서문시장 방문 일정을 취소한 대선주자도 나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29일 오후 대구를 찾아 서문시장을 둘러볼 예정이었지만 시장 상인들을 배려해 방문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 전 대표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이후 이미 두 차례나 서문시장을 다녀간 바 있다.

◇‘정치적 어젠다’ 포장용으로 봐야

정치인들의 서문시장 방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전문가들은 서문시장이 대구 서민경제의 상징성을 집약한 장소인 때문으로 분석한다. 강우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정치가 지역주의 정치로 돼있듯이 대선주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어젠다(Agenda·안)를 포장하기 위해선 정치적 상징이 필요하다. 광주 ‘5·18 민주화광장’처럼 대구에는 2·28기념중앙공원도 역사적인 공간이지만, 대구 서민의 삶과 경제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으로 서문시장이 적절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물론 박정희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어지는 대구 정서를 활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전략이 깔려있다. 서문시장은 박 전 대통령이 애착을 갖고 자주 찾았던 곳이자 현재 친박에게는 대척점이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 교수는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정책 등 어젠다가 대구의 상징성과 불일치되는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홍준표 도지사 같은 경우 경남에도 이슈가 많을 텐데 굳이 왜 서문시장에서 출마 선언을 했을까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면서 논리적인 비판을 받게 됐다. 자신의 대표적인 어젠다와 대구 상징이 일치하지 않은 부분”이라며 “실제 화마에 휩싸인 대구 서문시장과 어려운 대구경제 극복을 위한 어떤 정책도 내놓지 않고 해결책이 생략된 내질러가는 듯한 ‘서문시장 방문’은 대선주자들의 모든 정책이 공허하게 들리고 오히려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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