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각 따라 뜨거운 물 ‘쪼르륵’…향기로운 커피 완성
경사각 따라 뜨거운 물 ‘쪼르륵’…향기로운 커피 완성
  • 황인옥
  • 승인 2017.05.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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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이야기-(12) 메리타 드리퍼와 카리타 드리퍼
내부 경사각 통해 추출시간 조정
1/2에만 존재하는 돌출 리브
거친 잡미 추출 억제하는 효과
최상의 커피 위한 오랜 연구 성과
자칭 커피 전문가·바리스타 중 일부
추출 어렵다는 편견으로 메리타 기피
후발주자인 카리타 아류로 오해하기도
커피 도구에 대한 얕은 이해 아쉬워
메리타로추출된커피
메리타로 추출된 커피.
전(前) 주에 이어서, 드리퍼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다. 드리퍼는 핸드드립 커피를 선호하는 커피 마니아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품이고, 앞으로 이어질 커피추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메리타 드리퍼는 시중 마트에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커피기구 전문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전문성이 있는 기구처럼 보여서 일반인들이 쉽게 구입하기 어렵지만, 커피 전문가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 추출이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어떤 커피전문가는 사용방법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메리타 드리퍼가 만들어질 당시 메리타 여사와 그의 가족들이 연구하고 고민했던 메리타 드리퍼의 구조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단순하게 보이는 드리퍼지만 과학적인 이론이 뒷받침돼 있다.

그런데, 메리타 드리퍼를 카리타(Kalita) 드리퍼의 아류정도로 알고 있는 커피전문가가 의외로 많다. 만일 이 사실을 지하에 잠들고 있는 메리타 벤즈여사가 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원뿔형 메리타 드리퍼의 구조

현재 시판되고 있는 원뿔형 메리타 드리퍼는 3가지의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은 먼저 추출된 커피가 나오는 구멍이 원뿔 하단에 작은 홀의 형태로 하나뿐이라는 것과 원뿔내부 측면에 돌출된 리브(Rib)가 드리퍼 높이의 1/2정도 인 것. 그리고 3번째로는 원뿔의 완만한 경사각이다. 그러면 메리타 드리퍼의 특징을 차례대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원뿔하단에 난 구멍이 하나인 것과 그 구멍 크기가 작은 이유는 드리퍼 개발 당시, 커피추출방법이 지금의 드립방식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커피를 냄비에 끓여서 여과지가 들어있는 드리퍼에 붓거나, 여과지가 들어있는 드리퍼에 커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분쇄된 커피입자 속 커피성분이 충분히 추출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처음 메리타 여사가 개발한 황동 원형드리퍼에는 구멍이 8개 뚫려 있다. 그 후 1932년 원뿔형 드리퍼가 만들어지고 경사면의 리브로 인해 추출 속도가 빨라지자 많은 구멍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다음은 경사면 내부의 리브 형상인데, 리브로 인해 드리퍼 내부구조는 리브가 없는 상부의 경사면과 리브가 있는 하부의 경사면으로 나누어진다. 리브 부분은 여과를 빠르게 하고, 리브가 없는 내부 면은 여과지가 경사면에 밀착돼 여과기능을 하지 않는다. 만일, 드리퍼 내벽에 리브가 없다면 커피는 하단 끝부분에서만 추출돼 추출시간은 길어지고 커피는 식어서 맛없는 커피가 추출된다. 메리타 초기의 원뿔 드리퍼는 리브가 원뿔 내부 하단에서 상단까지 모두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점차 개량이 되면서 리브의 길이가 절반이하로 줄어들었다. 이 내용은 메리타 원뿔형 드리퍼의 중요한 특허내용이고 커피 맛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비밀이다. 추출 시 거품이 위로 상승하는데, 이 거품의 정체는 커피원두 센터 컷 내부에 숨어있는 실버스킨이 분쇄된 것이고, 과하게 분쇄된 미분가루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거품부분에서 추출되는 커피액체는 커피원두가 지니고 있는 본연(本然)의 맛과는 다른 잡미의 성향을 가진다. 따라서 상부벽면 내부에 리브가 없는 것은 이 거품부분에서 나오는 커피의 거친 잡미의 추출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특징은 원뿔형 드리퍼의 경사각도인데, 메리타사에서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추출시간을 위해 정한 경사각도라고 볼 수 있다.

◇메리타의 짝퉁, 카리타 드리퍼

메리타 드리퍼는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됐다. 출시가 되자, 쉽고 간편한 추출방법을 가진 메리타 드리퍼는 커피 마니아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메리타 드리퍼의 성공을 본 일본의 커피업계에서도 이런 드리퍼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일본에 국제 특허 등록이 돼 있어서 메리타 드리퍼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본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특허된 내용을 분석해서 특허분쟁을 피해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리타 드리퍼의 바탕이 되는 이론적 배경을 알 수 없었던 그들은 특허대상이 된 드리퍼 형태를 피해가는 방법을 찾았다. 따라서 특허로 인정받은 부분의 형태가 변형됐다. 하나의 구멍을 3개로 하고 리브를 상부까지 올렸다. 그리고 경사각도도 조금 세웠다. 이렇게 일본에서 메리타를 변형한 유사 드리퍼가 태어났다. 이름도 ‘카피된 메리타’라는 의미인지 몰라도 ‘카리타’라는 상품명이 붙여졌다. 이 드리퍼는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렸고, 한국에서도 드립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별생각 없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의 추천으로 시내 중심가의 장사가 잘되는 드립커피 전문점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 곳에서는 카리타 드리퍼를 사용하고 있었다. 커피 맛은 보통 수준으로 마실 만했으나, 목 넘김 이후의 느낌이 조금 떫고 거칠었다. 외모로만 본다면 주인은 대단한 커피전문가처럼 느껴졌다. 커피 리필을 부탁하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왜, 카리타 드리퍼를 사용합니까?”라고.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커피를 배울 때, 카리타 드립만을 배웠어요. 선생님이 다른 드리퍼는 어렵고 좋은 맛내기가 어렵다고 해서요.”대답이 의외였다. 왜냐하면 장사의 스타일과 분위기로는 일본의 도심에 있는 커피점과 비슷해서 혹시 일본에서 커피를 공부했는지 궁금했었다. 나의 오판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커피 값을 계산할 때, 주인은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어떤 드리퍼를 사용하던지 맛있는 커피만 만들면 되지 않나요?” 나는 당황했다. “아, 네. 그렇지요.”라고 빨리 얼버무리며 그곳을 나왔다. 당연히 드리퍼는 선택의 문제였다. 그가 어떤 드리퍼를 사용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에 대한 원리와 사용방법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대단한 커피전문가처럼 자신의 포스를 자랑하고 싶다면 말이다. 나는 그 집을 나올 때, 핸드드립 커피교실을 한다는 안내간판이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22년 전, 나는 커피를 시작하면서 드립추출법을 배우고 드리퍼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불타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자칭 타칭 커피전문가라고 알려진 3인이 있었다. 하루는 지인으로부터 그들 중 한분이 커피교실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카리타 드리퍼 사용법을 그로부터 배웠다. 커피지식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그가 작성해 놓은 서너 장 분량의 커피추출 매뉴얼은 나에게 바이블이 됐다. 그러나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부실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강의는 뜨거웠고, 비록 일본에서 오래 살다 와서 우리말이 조금 어눌했지만 선생님은 열과 성의를 다했다. 기대가 컷 던 나는, 그날 커피수업만으로는 나의 지적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우리의 현실에서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넓은 세상에서 보다 나은 선생님을 찾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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