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의 커피이야기]증기압 활용 향긋한 커피 추출…클래식한 매력의 ‘사이폰’
[이병규의 커피이야기]증기압 활용 향긋한 커피 추출…클래식한 매력의 ‘사이폰’
  • 황인옥
  • 승인 2017.05.3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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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고노家 이야기-고노 사이폰 커피
사이폰社 창시자 고노 아키
진공식 추출기구 연구 시작
사위 토시오, 代 이은 노력으로
유리파손·물 유입 문제 등 해결
1957년 ‘고노형 사이폰’ 출시
커피 맛·제품 내구성 ‘두 토끼’
일본커피
1927년 우에노의 고노 아키(오른쪽 두번째)씨의 집에서 열린 커피 파티의 모습.

고노사이폰물끓이기
고노 사이폰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
커피 생두판매회사 대표인 Y는 흥분된 목소리로, “형, 나 지금 일본에 가려고 공항 나가는 길이야. 고노 회장님이 돌아가셨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뭐? 고노 회장님이. 몸이 편찮아서 병원에 계신다더니. . . 결국 그렇게 되셨구나. 동생, 나는 못가지만 잘 다녀와. 그리고 ‘마사노부’사장에게 안부 전해줘.” Y는 고노의 2대째 고노 토시오(河野 敏夫) 회장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날이 2008년 6월 20일로, 고노 가(家)를 일본의 커피 명문집안으로 만든 고노 토시오 회장이 향년(享年)86세로 세상을 떠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한국의 가난한 유학생 Y에게 커피를 가르쳐주고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 준, Y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나는 고노의 명문드리퍼를 오랜 기간 사용하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드리퍼를 만든 장본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를 찾아 2006년 6월경에 Y와 함께 고노 회사를 찾아갔었다. 그 때에, 고노회장은 이미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고노 가(家)의 커피이야기 두 번째로, 부친이 만든 ‘고노 사이폰’을 완벽한 커피추출기구로 완성한 고노 토시오 회장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이폰 연구의 시작

‘커피 사이폰(주)’의 창업자인 고노 아키(河野 彬) 씨는 1917년 일본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서 해부학을 전공하고 싱가포르 주재 일본대사관 의무관으로 근무를 하면서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프랑스에서 만든 진공식 커피 추출기구를 알게 되었다. 기구에 관심이 많은 고노아키 씨는 이 기구를 구입했고, 이 기구를 사용하면서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당시 유럽에서 1841년 리용에 사는 ‘바시우(Vassieux) 여사가 이중 유리풍선모양의 진공식 커피기구를 디자인해서 만든 이후, 유럽과 미국 등 각 나라에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면서 발전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기구를 사용하면서, 진공식 커피 추출기구로 만든 커피가 더 맛이 좋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전공인 해부학적 본능이 발동되었는지, 사용하던 진공식 커피추출 기구를 하나씩 뜯어 분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는 커피기구에 숨어 있는 추출원리를 밝히는데 집중했다. ‘해부학, 분석능력, 커피’3가지에 고노 아키 씨의 흥미가 더해지면서, 고노 집안(河野 家)의 커피추출 연구가 시작되었다.

1922년 관동대지진이 나자 고노 아키 씨는 귀국을 해서 동경역 야에스 근처에 의료용품 수출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회사 영업을 하면서도 커피연구를 계속했다. 그에게 기술적으로 부족한 유리 제작부분은 유리소자 생산 업체의 도움을 받아서 독자적인 커피 추출기구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 몰두한지 거의 2년이 지난 1924년에, 고노 아키 씨는 의학 실험용 용기가 연상되는 ‘유리 프라스크’와 ‘유리 로드’로 구성된 커피 추출기구를 완성하고 상품화했다. 상품명은 ‘다배 사이폰(茶? サイフォン)’이었다.

◇사이폰의 판매와 가업 승계

사이폰의 판매는 매우 화려하게 출발을 했다. 1927년 일본 최고의 백화점인 니혼바시의 ‘미스코시’에서 ‘고노 아키’씨 부인이 백화점 매장에서 커피추출을 직접 시연하면서 판매했다. 그러나 당시 가격으로 1엔 80전은 비싼 가격이어서 판매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판매는 꾸준하게 되었다. 1934년에는 해외에 수출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생산을 중단했다.

1949년 전쟁이 끝나자, 사이폰 제조를 다시 재개했지만 2년 뒤인 1951년에 고노 아키 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승계할 아들이 없는 고노 가(家)에 운이 다한 것처럼 보였다. 고노 아키 씨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이 사망하기 4개월 전, 토시오(敏夫)씨를 고노 집안에 데릴사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토시오씨의 직업은 넥타이를 판매하는 일이어서 사이폰이나, 커피, 유리 등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더군다나, 커피는 쓰기만 하고 맛있다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그였기에, 현실적으로는 가업을 이어가야 할 처지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토시오를 불러, “토시오야, 전무가 되어 가업을 받아라.”라고 권했고, 그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고노 아키 씨가 하던 모든 것을 승계했다. 이 때가 1952년으로 그는 ‘커피 사이폰(주)’의 전무가 되어 커피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고노 토시오 씨는 어짜피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하나씩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고노형 커피사이폰

‘고노 토시오’씨는 영업을 위해 거래처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노 토시오 씨를 보자, 사이폰 사용 시 불편했던 내용들을 지적하고 그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판매된 제품의 상당량이 유리 파손으로 반품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이폰의 ‘플라스크’와 ‘로드’가 천연유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객들을 만나면서 가장 시급한 회사의 당면문제가 유리문제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유리도 커피도 너무 몰랐기에 커피공부를 시작했다. 커피를 배우기 위해 ‘에비앙’의 지배인인 ‘가네다’씨의 도움을 받았고, 그의 소개로 ‘일동커피’의 ‘하세가와(長谷川)’씨로부터 커피배전과 추출을 배우면서 본격적인 커피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유리는 유리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내열유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소개받은 유리공장에 내열유리 제품제작을 의뢰했다. 유리전문가들은 고노 토시오 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강도의 ‘프라스크’와 ‘로드’를 만들어 주었다.

또한 ‘프라스크’와 ‘로드’의 접합부분에 대한 불편한 문제까지 매끄럽게 처리해 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한 큰 과제가 남아있었다. 사이폰 추출 시, 프라스크 내의 끓는 물이 갑자기 폭발하듯 로드 위로 올라가 커피와 급하게 섞이는 현상이었다.

즉, 프라스크에 있는 물이 가열되면 수증기로 변하고, 수증기가 밀폐된 프라스크 속의 물에 압력을 가하면, 뜨거워진 물은 압력을 받아 서서히 위로 올라가 로드 속에 유입되는데, 이 과정의 시간이 적절하게 확보되어야 분쇄된 커피와 뜨거운 물이 골고루 교반될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어야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노 토시오 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녔던 대학의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 결과 ‘로드’와 여과기를 고정하기위해 사용한 속이 빈 쇠구슬 줄(넥타이핀에서 아이디어를 얻음)을 끓는 물속까지 길게 늘어뜨려 놓으면, 가열시 속이 빈 쇠구슬 속에서 기포가 서서히 발생하기 때문에 폭발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후, 고노 토시오 씨는 사이폰에 제기되었던 소소한 문제까지도 모두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사이폰을 더 보기 좋고 쓰기 편하게 개선하고 개량했다. 5년이란 긴 세월동안 시간과 돈 그리고 열정을 모두 투자해서, 선대가 이루어 놓은 ‘다배 사이폰’을 1957년 ‘고노형 사이폰’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는 현재 판매되고 있는 고노형 사이폰의 원형이 되었다.

*위의 글에서 사용한 고노사이폰 회사의 기록(사진 포함)은 ‘고노 토시오(河野 敏夫)’씨가 생전에 발표했던 ‘일본인이 완성한 커피사이폰’이라는 자료에서 일부 인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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