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 가득한 해안길에서 거장을 만났다
푸르름 가득한 해안길에서 거장을 만났다
  • 대구신문
  • 승인 2017.06.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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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의 역사·문화 숨결 따라 <3>영덕군

산·들·강·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 품은 ‘영덕’

고려말 대유학자 목은 이색

충절 되새기는 괴시리전통마을

도지정 문화재자료 16점 등록

300년 넘는 옛 고택의 멋 오롯이

‘불교계의 종조’ 나옹왕사 출생지

전국에 수많은 사찰 건립하며

불교 중흥에 큰 공적 남겨
고래불해수욕장
경북 동북부에 위치한 영덕은 아름다운 바닷길과 숲속 계곡 등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목은 이색, 나옹왕사, 신돌석 의병대장 등 걸출한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사진은 고래불해수욕장 전경.
동해안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영덕은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 경관과 찬란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동해 푸른 바다를 맘껏 즐기며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 할 수 있는 7번 국도의 중심에 영덕이 있다. 그 푸르름 가득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도 자연의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바람의 속도로 그리움이 일렁이고 바위를 때리며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자꾸만 세상 시름을 내려놓으라 재촉한다. 자연과 문화, 인간이 더불어 숨 쉬고 살아가는 영덕을 만나 보자.



◇목은 이색의 충절 되새기는 괴시리전통마을

영해면 괴시전통마을
영해면 괴시전통마을 전경.
영덕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려면 괴시리전통마을로 가야 한다. 이곳은 영양 남씨 집성촌으로 300년이 넘은 고색창연한 옛 고택의 멋과 향기를 맘껏 느낄 수 있다. 동해를 가로막고 남북 방향의 산세로 둘러져 아늑하고 평온함이 깃든 괴시리전통마을은 그 역사만큼이나 자손 대대로 수많은 선비를 배출한 유서 깊은 반촌(班村)이다. 황토빛 담장을 따라 만나는 전통 가옥들은 서로 얼굴 맞대고 도란도란 옛 이야기를 나누는 듯 정답다. 조선후기 영남지역 사대부가의 원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괴시리전통마을은 문화와 예절도 함께 전승되고 있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르침을 오롯이 배울 수 있다. 마을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한 괴시파종택을 비롯해 대남댁, 영은고택, 물소와고택 등 여러 고택과 서당, 정자 등 16점이 도지정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어 가히 ‘문화재마을’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이 마을에는 그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했는데 유독 빛나는 역사 속 인물이 있다. 바로 고려 말 대유학자 목은 이색이다. 외가인 영덕 영해면 괴시리 무가정에서 태어난 목은 이색은 일찍이 아버지가 머물렀던 원나라에 유학하였고, 2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학식을 쌓고 명성을 드날렸다. 자신의 출생지인 호지촌을 원나라의 괴시라는 마을과 지형이 흡사해서 괴시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 대제학을 역임한 관료로서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고려를 지키려고 충성을 다했던 충신이자 대 사상가였던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전통마을의 언덕 높은 곳에 목은 이색을 기리는 ‘목은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앞에는 포동포동한 둥근 얼굴 속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좌상과 정자가 있다. 목은 이색의 생애와 사상을 고이 간직한 유물을 전시해 놓은 기념관을 둘러보노라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이 절로 느껴진다. 그는 고향을 떠나 살았지만 평생 영덕을 잊지 못해 20여 수에 이르는 시를 남겨 향수를 달랬고, 6,000여 수의 방대한 시문은 학문적 업적의 위대함을 웅변해 준다. ‘영해 동녘바다 해돋이’를 노래한 시에는 고향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녘바다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 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황량한 마을서 하룻밤 단란하게 묵으면서

젊은 시절 회포를 자세히 못 논해 보았는데

회상컨대 몇 년 새에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까지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



◇한국 불교 종조(宗祖)로 불리는 나옹왕사와 반송유적지

우리 역사에서 불교의 숨결이 어느 순간 없었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불교는 우리의 역사 가운데 큰 획을 긋는 중심에 있었다. 역사상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종교적 우수성과 함께 위대한 고승의 업적이 세세생생 전해 내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목은 이색과 동시대 인물로 영덕이 낳은 또 다른 역사적 인물이 있다. 바로 고려 말 공민왕과 우왕 때 왕의 스승으로 칭송 받았던 나옹왕사다.

나옹왕사는 태몽부터 남달랐다. 어머니 정씨의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잉태했다고 한다. 나옹왕사는 가난하게 살다 세금마저 내지 못해 끌려가는 어머니 뱃속에서 가까스로 태어났다. 출생과 동시에 어머니를 잃은 핏덩이를 수백 마리의 까치들이 둘러싸 보호해 하늘의 비호를 받고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설을 말해주는 ‘까치소(鵲淵)’라는 이름의 지명이 남아 있어 나옹왕사의 비범한 탄생설화와 함께 전승되고 있다.

나옹왕사는 20세에 인생무상을 깨달아 수행자가 되기를 결심하고 반송 지팡이 하나를 거꾸로 꽂아두고 “이 나무가 살아 자라면 내가 살아있는 줄 알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는 비장한 말을 남기고 홀연 출가했다. 신기하게도 후에 반송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낙락장송으로 자라나 무려 625년이나 살다 1965년 경에 고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 반송을 꽂았던 자리에 다시 반송을 심어 반송유적지로 일대를 정비하여 나옹왕사를 기리고 있다. 이곳에는 세간에 회자되는 나옹왕사가 남긴 유명한 게송이 큰 비석에 새겨져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왕사는 출가한 후에 중국 원나라에서 지공화상을 만나 2년간 수도하면서 그의 사상적 계승자로 귀국해 전국 곳곳에 수많은 사찰을 건립하며 불교 중흥에 큰 공적을 남겼다. 또한 나옹왕사의 뒤를 이어 조선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무학대사로 하여금 스승과 제자로서의 법통을 잇게 하는 등 14세기 후반 왕조의 변혁기에서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받는 불교계의 종조(宗祖)라 불릴만하다. 지공화상-나옹왕사-무학대사로 이어지는 3대 고승의 진영은 나옹왕사가 창건한 영덕 장육사 홍련암에 모셔져 있다.

영덕이 낳은 목은 이색과 나옹왕사는 생전에 서로 교류한 흔적은 없지만 기이하게도 태어난 곳과 여주 신륵사에서 사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나옹왕사의 비문 대부분을 목은 이색이 썼다는 사실이다. 성리학과 불교의 두 거장이 사상적으로 그리 멀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영덕 구석구석 둘러보기>

▲신돌석 장군 유적지

신돌석장군유적지1
신돌석장군유적지.
영덕군 축산면 도곡2리 마을회관 앞에 이르면 돌 우물이 가지런한 작은 초가집 두 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조선 후기 의병 대장으로 활약한 신돌석 장군이 탄생한 곳이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신돌석 장군 유적지 성역화 작업을 마치고 장군의 충혼과 넋을 기리고 있다. 신돌석 장군은 평민의 신분으로 국운이 쇠퇴한 시기에 어린 나이로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의병대장이 된 인물이다. 유적지에는 장군의 업적을 담은 기념관이 있는데 동상과 의병활약상 등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고, 경내에는 장군의 월송정시비와 의병대장 신공 유허비, 사당 등이 있다.


▲블루로드

죽도산(블루로드)
죽도산(블루로드)
영덕 블루로드는 빼어난 절경과 함께 푸른 동해바다의 내음을 느끼며 걷는 명품 트레킹코스를 말한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770km 해파랑길의 일부로, 영덕 대게공원을 출발해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보여행을 위해 조성된 약 64.6km의 해안길이다.

이 길은 특색 있는 아름다움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테마관광 부문 2015소비자선정 최고의 브랜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블루로드는 푸른 동해의 풍광과 풍력발전단지, 대게원조마을, 축산항, 괴시리마을 등 풍부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가족이나 어린이를 동반해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등을 둘러보며 환경의 중요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친환경적인 생태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삼사해상공원

삼사해상공원(해맞이행사)
삼사해상공원(해맞이행사)
삼사해상공원은 자연전망대가 있어 동해의 멋진 해안 풍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해맞이의 최적지로 알려져 새해가 되면 전국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활기찬 한 해를 시작하는 기원 행사를 개최한다.

그밖에도 이북 5도민의 망향의 설움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망향탑과 경북개도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설치한 경북대종, 공연장과 인공폭포,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삼사해상공원 내에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이 있어 어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는 영덕에 대한 연혁과 바다 이야기, 어선과 어업에 관한 자료, 어업에 사용되는 어기구, 지역 특산물인 대게에 관한 자세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북 동북부에 위치한 영덕은 아름다운 바닷길과 숲속계곡 등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목은 이색, 나옹왕사, 신돌석 의병대장 등 걸출한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사계절 오감만족 여행지로 각광 받는 영덕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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