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기다림의 연속…한 모금 커피로 감동 주고파”
“고독한 기다림의 연속…한 모금 커피로 감동 주고파”
  • 박상협
  • 승인 2017.08.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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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이양기 (22)남산골 커피클럽
지친 심신으로 커피공부에 매진
커피향 나는 공간, 손님들과 공유
오로지 ‘맛있는 커피’ 판다는 각오
생두 구입 때마다 원칙 지키려 노력
사람의 향기 넘치는 공간 만들어
드립장면
드립 장면.

오늘은 좀 멋쩍지만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사는 이 남산골의 커피장사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한번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매우 사적인 이야기 같지만, 남산골에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나의 삶도 잠시 되짚어보면서….

◇자유의 구속(拘束)

오늘 이야기는 며칠 전에 왔다간 손님의 대화가 발단이 되었는데, 함께 온 손님 중의 한분이 불쑥 꺼낸 그 한마디가 나의 심경을 건드렸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 커피가게를 하다가 처분하고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커피장사는 외형적으로는 좋아 보여도 자유가 없고 자신을 구속하는 일이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막상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도 마음공부가 부족한 탓 일진데, 커피가게를 하면서 자유가 구속되는 것을 모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날의 대화에서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 잊고 있던 나의 처지(處地)가 생각나서 옹졸한 변명 같은 이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각자의 삶 속에 자신을 스스로 구속시키는 요소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 중 제일 대표적인 것이 먹고 사는 일인데, 이것에 대한 중압감은 실로 대단해서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그 누구도 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찾았다는 손님의 말은 먹고사는 일도 해결했다는 것이기에 당당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날의 손님이 어떤 방법으로 먹고사는 일을 해결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커피장사를 본업으로 했던 사람이라면 불안한 자영업에서 성공적인 탈출을 한 경우일 것이고, 부업으로 했던 사람이라면 먹고사는 일에 목숨을 걸 지는 않았을 터이니 본업으로 되돌아 간 것일 게다.

남산골커피클럽간판
남산골 커피클럽 간판.

◇기다림

이젠 본격적으로 나의 남산골 커피장사이야기를 해야겠다. 이곳 남산골 같은 변두리 골목에서 커피장사를 한다는 것은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다. 한없는 기다림에 지쳐서 동백꽃잎이 뚝 떨어질 즈음이면 반가운 단골손님이 얼굴을 내밀 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 기다림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오히려 고독한 기다림을 관조(觀照)하며 즐기는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고독한 기다림에 숙달된 필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산동 커피클럽에 온 손님들은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는지, 이구동성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왜 이런 곳에서 커피장사를 하세요?”다. 나는 매번 똑같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게 응대한다. 그렇지만 그 끝은 ‘건강상의 이유로 한적하고 교통이 편리한 이곳을 찾아서 살집을 지었는데, 좋아하는 커피를 공부하면서 먹고 살기위해 커피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숨김없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느 날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낮에 온 손님들과 대화 도중에 “장사가 되지 않을 이런 위치(남산골)에서 왜 장사를 시작했느냐?”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받았다. 그날도 대답은 똑같이 했는데, 밤에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낮에 했던 대화의 내용이 마음을 그렇게 불편하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도 나의 자격지심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밤은 게임에 진 바둑판을 복기(復棋)하듯, 남산골에서 커피장사를 시작하게 된 원인부터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날의 결론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건강상의 문제가 매우 심각해서, 감히 커피장사를 본격적으로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나의 심신(心身)은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에 갇힌 상황이어서 하루라도 빨리 그 터널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삶의 조건도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서 운신의 폭이 클 수 없었다.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지루한 5년의 시간을 빨리 잊는 것이었고, 시간이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태연하게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 때의 심경(心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의 장소로 조용한 뒷골목에 위치한 서민적인 남산골을 선택했고, 자신에게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도(道)를 닦는 마음으로 커피공부를 계속하면서 커피를 볶고 또 볶았다.

남산골커파클럽실내
남산골 커피클럽 실내.

◇양심 커피

나는 이곳 커피클럽을 시작하면서 커피향기가 있는 이 공간을 손님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었는데, 하나는 양심적인 커피를 만들어 파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람의 향기가 흐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양심이라고 말하면 도덕적인 냄새가 나서 필자인 나부터도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동안 커피를 만들면서 스스로 체득한 나의 잠언(箴言)같은 문구가 있는데, 그것은 ‘입으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커피의 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그래서 나는 이곳 남산골에서 양심에 위배된 커피를 팔수 없고, 오로지 맛있는 커피만 판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커피란, 순수한 원두커피만으로 추출된 투명한 커피로, 한모금의 커피만으로도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커피를 말한다. 필자인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커피를 알면 알수록 커피 파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커피생두를 구입할 때마다 까다롭게 따지고 묻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품질이 좋은 생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산지의 작황과 생산국 농민들의 정서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커피를 볶을 때에도 잡념이 없이 집중하기 좋은 시간대를 택해야 한다. 혹시라도 잠시 유혹에 빠져서 낮은 등급의 커피를 구매한다든지, 커피의 향미가 사라져버린 상품을 파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주변에 난립하는 커피 프랜차이즈나 크고 작은 커피가게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못된 로스팅과 신선한 향기가 사라져버린 산패된 커피를 아무거리낌 없이 팔고 있는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커피 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사람의 향기

‘인생은 고독한 기다림’이라는 것을 남산골 커피장사 1년 만에 알게 되었다면, 아직도 세상물정모르는 철부지라고 하지 않을까? 어떻든 나에게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고 설렘의 감정으로 느껴진다. 예전에도 커피장사를 하면서 커피를 팔아 줄 손님을 기다려 본 적은 없었다. 나의 커피가게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땀 내음에 젖은 심신을 한 잔의 커피로 위로 받고자 하는 사람, 즐거운 하루를 커피 한 잔으로 멋지게 마감하려는 사람, 커피를 마시며 인생을 사색하려는 사람. 등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어떤 사람들도 반가워서 호불호(好不好)를 가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고유한 마음의 향기를 지니고 있기에 편안한 분위기에 젖기만 하면 누구나 마음을 열고 자신의 향기를 뿜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저, 맛있는 커피를 성심성의껏 준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남산골 커피클럽은 사람의 향기가 넘치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재즈와 클래식을 들으면서, 커피를 즐기고 사람의 향기가 넘쳐나는데 커피장사가 자유를 구속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다 아는 이야기 이지만, 어떤 누구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주변에서 커피장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을 정말 구속하고 있는 것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그래서 남산골 커피클럽처럼 영세하게 커피장사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기다림은 구속이 아닌 설렘이고, 희망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커피를 원하는 고객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맛있는 양심의 커피를 준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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