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의 고향, 200여년간 학자 63명 배출 ‘선비고장’
시인 조지훈의 고향, 200여년간 학자 63명 배출 ‘선비고장’
  • 김지홍
  • 승인 2017.08.27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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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주실마을
400여년 이어온 한양 조씨 집성촌
구한말 계몽·개혁 운동에 앞장
창씨개명서 이름 지켜낸 유일한 마을
월록서당·호은종택·옥천종택 등
옛 건물양식 엿볼 수 있어 눈길
영양주실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400여년이 된 한양 조씨 집성촌이자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곳이다. 주실마을은 애국·개화·문화의 중심지이자 문학마을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드론 촬영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 곱아라 곱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 파르란 구술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회장저고리 / 회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 살살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 /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시인 조지훈의 ‘고풍의상(古風衣裳)’ 중에서…

동탁 조지훈(1920~1968)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록파 시인이자 국문학자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비극적인 국면을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초기 작품에선 우리나라의 전통·민족 의식에 대해 서정적·동양적인 미(美)를 추구해왔다. 그의 ‘고풍의상’은 등단 작품이기도 하다. 전통적 건축물이 지닌 선의 아름다움을 부연의 곡선으로 대표하면서 그 처마 밑으로 구슬로 만든 발을 내린 운치 있는 달밤의 광경과 한복을 입은 미인의 요조하고 품위 있는 동작을 묘사하고 있다. 조지훈이 자신의 고향 주실마을 풍경을 떠올리며 지었다고 한다. 그의 향수가 남아있는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을 따라 가본다.

월록서당 (2)
월록서당

◇전통마을이 애국·개화·문화마을로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400여 년이 된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 마을의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마을 앞에는 장군천이 흐른다. 마을은 산 아래 폭 안긴 듯한 느낌을 준다. 일월산의 정기가 물고를 대듯 흘러드는 고을이라 해 주실, 주곡(注谷)이라 한다.

조선 중엽 한양 조씨 조원의 두 아들 조광인과 조광의가 마을에 자리를 잡는다. 마을은 70여 가구 350여 명이 살았던 작은 규모였다. 노론·소론·남인 사이에서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자 후손들의 벼슬길이 막히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한양 조씨 가문은 재야(在野)에서 가학(家學)을 중심으로 학문과 예절에 힘썼다. 이후 후손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공을 세우면서 가문을 일으켜 지역 기반을 넓혔다.

1763년(영조 39년) 마을에서 기와를 굽기 시작했다. 자손이 번창하고 문풍이 크게 일어나면서 서당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대표적인 서당은 ‘월록서당(月麓書堂)이다. 월록서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해 책 읽기 좋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만들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은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른쪽은 ‘극복재(克復齋)’, 왼쪽에는 ‘존성재(存省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됐다.

가학의 교육 장소는 월록서당 외에도 호은정사, 창주정사, 사미정, 만곡정사, 침천정, 학파정 등이 있다. 마을은 과거제도가 폐지되기까지 265년 동안 문집과 유고를 남긴 학자들만 63인에 이른다. 마을은 조선 후기 실학자 채제공·정약용·이가환 등 실학자와의 교류도 활발했다. 그래서 새로운 학문과 신진 문물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이후 개화기에도 친화적이고 진취적인 문화에 앞장섰다. 관례와 혼례의 통합 등 생활 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마을은 ‘개혁의 고장’이라 불렸다. 1899년 구한말 일제강점기 유학자 조병희(1880~1925)가 마을의 청년을 이끌고 서울 개화·개혁 운동에 동참했다. 국민교육회와 대한자강회 등에서 활약했다. 독립운동가 조창용은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마을에선 영진의숙·배영학당 등 노동야학과 여자야학이, 신간회 사업 등이 벌어졌다. 1940년 일본의 창씨개명에 저항해 성과 이름을 지켜온 유일한 마을이기도 하다.

옛 건물도 마을의 뜻을 그대로 나타낸다. 마을의 대표 건물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은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잡고 있다. 조지훈이 태어난 곳이다. 6·25전쟁 당시 일부 소실된 것을 1967년 복구했다. ㅁ자형 몸채에 ㅡ자형 대문채가 결합된 형태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와 남성의 생활공간 사랑채가 분리돼 있지 않고 한 몸에 결합돼 있다. 영남 남부지역의 분리된 공간 구성과 달리 경북 북부 지방의 일반적인 건축양식이 눈에 띈다. 호은종책은 경북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됐다.

주실 입향조의 후손인 조덕린(1658∼1737)의 종택인 옥천종택(玉川宗宅)도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인 초당, 가묘인 사당으로 구성된 17세기 말 양반 주택의 대표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옥천종택도 경북도 민속자료 제42호로 지정됐다.

지훈문학관 (4)
지훈문학관

◇변화를 거듭하는 지훈문학마을

마을은 예로부터 재물과 사람, 문장(학문)은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문장은 ‘문필봉(文筆峰)’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양 조씨 종가에선 마을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문필봉’을 찾는 것이라 한다. 문필봉은 호은종택과 마주하고 있다. 호은종택의 대문을 등지고 맞은편을 보면 여러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 중 대문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봉우리가 바로 마을의 문필봉이다. 문필봉이란 풍수학에서 붓의 모양을 닮은 봉우리를 가리키는 말로 문필봉을 마주하고 있는 집이나 마을에서는 훌륭한 학자가 태어난다고 전해온다. 특히 마을의 문필봉은 그 봉긋한 생김새는 물론 물길까지 끼고 있어 최고의 지형으로 꼽힌다.

마을은 최근 조지훈 문학 마을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마을에는 2007년 ‘지훈문학관’이 건립됐다.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입구에 걸린 지훈문학관의 현판은 미망인 김난희(97)여사가 직접 썼다. 조지훈의 가족사와 사진 100여 점을 볼 수 있다. 그가 즐겨쓰던 모자·장갑, 안경 등도 전시돼 있다.

마을은 영양군의 지원을 받아 문인협회 주최로 매년 5월 ‘지훈예술제’를 연다. 3천명에 이르는 방문객이 마을을 찾는다.

마을에는 울창한 ‘주실마을 숲’이 있다. 일명 ‘시인의 숲’, ‘조지훈 숲’이라 불린다. 1만1천570㎡(3천500평) 규모로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여 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숲은 2013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올해부터 관광객들이 찾아 쉴 수 있는 숲으로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캠핑장으로 활용하도록 급수대와 그네 등도 설치했다. 2018년 故조지훈 시인의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글=윤성균·김지홍기자

사진=전영호기자

조석윤한양조씨-25세손
“고향에 오시면 늘 막걸리를 잡수시고 시를 지으셨어요. 막걸리를 엄청 좋아하셨죠.”

한양 조씨 25세손 조석윤(64·사진) 선생은 주실마을을 찾은 조지훈 시인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조 선생은 지난 2012년쯤 오랜 타지 생활을 접고 고향인 주실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전통문화마을을 살리자는 차원에서 주실마을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동네 자체가 아름다운 곳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마을을 방치해서 안되겠다 싶었다. 마을의 특성과 기치를 알리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 선생은 전통놀이·고택 체험 등 ‘주실’만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특히 마을 특유의 전통 윷놀이인 ‘건궁윷말’을 복원할 예정이다. 이 윷놀이는 윷만 있을 뿐 윷판과 윷말이 없다. 일반 윷패(도·개·걸·윷·모)가 아닌 마을만의 규칙이 따로 정해져 있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팔뚝만한 윷을 거의 구불려서 게임을 진행한다. 조 선생은 “어릴 적 명절이 되면 윗·아랫마을 사람들 40명이 넘게 모여 이 윷놀이를 했다. 20년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지만 다시 되살릴 예정”이라며 “마을의 비어있는 고택이나 정자는 세미나 등 행사 장소와 숙박 시설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도덕·문학 등 아카데미를 만들어 교육 공간이자 기성 세대와 신세대가 문학으로 하나가 되는 고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조 선생은 현재 ‘마을 투어’ 코스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마을에 한번 들어오면 중복되는 길이 없도록 효율적인 관광 코스를 짜고 있다”며 “영양 주실마을이 관광특화마을로 자리매김해 관광객들에게 마음의 여유와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척금대(곡강)

영양군 팔경 중 하나다. 척금대는 물길로 산을 깍아 지른 듯한 석벽이다.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강과 산이 맞닿은 곳에 평평한 석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척금대는 영양군 일월면 곡강리 앞 변변천 일대에서부터 영양읍 동부리·삼지리·상원리·하원리 마을을 끼고 있다. 일월산 동쪽에서 발원한 하천이 흘러오다 물길을 막아선 산으로 물길이 돌아가 곡강이 됐다. 곡강에 의해 잘려나간 석벽이 척금대가 됐다. 1692년(숙종 18년) 현감 정석교가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고 척금대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온다.

흥림산자연휴양림
홍림산자연휴양림

◇흥림산자연휴양림

주실마을과 가까운 휴양림이다. 자그마한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로 발을 내딛이면 자연이 주는 힐링이 온몸에 퍼진다. 모노레일을 타고 아름답고 소소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산 중턱에 올라가면 자그마한 동화 속 풍경같은 휴양림이 나타난다. 휴양림 건축물은 모두 목재로 마감됐다. 숲속의 집 테라스 등 다목적 공간과 모던한 실내 건축 구조로 설계돼 사용하기 편리하다. 산림문화 유양관, 테라스하우스 등 기본적인 휴양 시설과 짚라인, 목재문화체험관 및 야외 목재체험 시설이 들어서 있다.

◇영양향교

영양군 일월면 도계리에 있는 향교(경북 문화재자료 제75호)다. 1679년(숙종 5년)에 현유(賢儒·어진 선비)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주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했다. 현존하는 건물로 맞배지붕 겹처마에 8칸으로 된 대성전와 공(工)자 지붕 홑처마에 7칸으로 된 명륜당, 신문(神門), 사주문(四柱門) 등이 있다. 명륜당의 현판은 고려 말의 명필인 한수(韓修)가 썼다. 대성전에는 중국 5성(五聖,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과 송조4현(宋朝四賢 , 주돈이·정호·정이·주희), 한국 18현(韓國 十八賢, 설총·안유·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송준길·최치원·정몽주·조헌·송시열 등)의 위패가 봉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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