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일어서는 달마처럼…지친 사람들에 용기를”
“넘어져도 일어서는 달마처럼…지친 사람들에 용기를”
  • 황인옥
  • 승인 2017.10.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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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이야기
(25)故 모리미투 무네오씨의 카페비미 이야기(3편)
계산전표 뒤 손님들 향한 격려의 詩
그도 달마인형 보며 힘든 시절 견뎌
작년 12월 한국서 ‘커피 인생’ 마감
올 봄 그가 없는 카페비미 다시 찾아
그의 빈자리 아내 미츠코씨가 지켜
40년 명성·커피철학 그대로 이어져
생전의모리미투무네오씨

달마 놀이하는 틈에

시절도 변했지만

마음 편히 커피라도 마시면서

기운차려 일어나 보세요.

달마(達磨)와 모리미투 무네오씨

옆의 글은 후쿠오카에 있는 커피전문점, 카페비미의 계산전표 뒷면에 있는 일본어로 된 글을 필자가 의역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주인인 모리미투 무네오씨다. 어느 해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 해 5406번째 손님이었다. 솔직히, 계산전표 뒷면에 이런 짧은 시를 적어 놓은 의도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이곳에 방문한 손님들이 자신의 커피를 마시고 힘든 세상을 잘 이겨 내라는 격려의 글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는 ‘달마가 넘어졌다.’(ダルマサンガコロンダ)에 심취되어 있었다. ‘달마가 넘어졌다.’라는 것은 일본에서 유행한 숨박꼭질의 응용놀이로, 우리나라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숨박꼭질과 같은 놀이다. 그런데, 무네오씨 삶의 흔적을 추적하면 할수록 그가 ‘달마가 넘어졌다.’라는 놀이에 나오는 달마(達磨)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학업에 실패하고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 스스로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오뚝이 달마인형을 보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인지, 달마(達磨)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그의 삶 속에 하나의 가치관이 되어 수호신처럼 그의 주변에 나타났다.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은 카페비미의 심볼로고 속에 그려져 있는 달마인형의 이미지였고, 그 다음은 바 테이블위에 있는 설탕을 담은 도자기로, 형상이 달마인형을 닮았다.

2014년 후쿠오카지역의 관광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달마의 이미지를 간판의 심볼마크로 디자인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달마오뚝이인형
달마 오뚝이 인형(왼쪽)과 설탕이 보관된 달마인형 도자기.

“달마는 넘어져도 스스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다시 자신을 찾아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카페비미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일어서는 그런 가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계산전표의 뒷면에 ‘달마가 넘어졌다.’라는 글을 적어 놓았다.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다르지만, 일본인들은 쓰러뜨려도 스스로 일어나는 모습을 상징화한 오뚝이 달마(達磨)인형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는 9년 동안 좌선을 하면서 손과 발이 썩어버려 몸통이 둥글하게 되었다는 전설의 달마대사를 생각하면서, 가게를 찾아오는 고객들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카페비미를 시작했다.

설탕이보관된달마인형도자기
달마 오뚝이 인형(왼쪽)과 설탕이 보관된 달마인형 도자기.

# 귀천(歸天)

모리미투 무네오씨는 후쿠오카에서 카페비미를 40년간 운영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무네오씨는 9개월 전, 2016년 12월 7일, 인천공항 대합실에서 그의 커피인생을 마감했다. 무네오씨는 커피로스터 업체인 후지로얄과 함께 넬꼬(Nelcco)라는 융드립 커피기구를 개발하고, 그 시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행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의 사망소식을 늦게 들었다. 그래서 올 봄 4월에 시간을 내어 무거운 마음으로 카페비미를 찾았다.

며느리마이와미츠코씨
故 모리미투 무네오씨의 며느리 마이와 아내 미츠코씨.

사모님 미츠코(森光 充子)씨를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무네오씨가 없는 그곳은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을까? 분위기는 변했을까?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솔직히 먼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막상, 1층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2층 계단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을 오르자, 계단 난간 위로 카운터에 서있는 미츠코씨의 모습이 보였다. 반갑기도 하고, 무슨 말을 어디에서부터 꺼내야할지 망설이면서 카운터의 맨 끝 창가에 앉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와 눈인사를 나누고 뒤이어 준비한 조문인사도 했는데, 예상치 못한 위로의 말에 미츠코씨는 당황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순간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잠시 어색한 분위기의 순간이 흘렀다.

나의 관심은 커피 맛이었는데, 그녀가 만들어 준 커피는 무네오씨의 커피와 큰 차이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네오씨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는지 2년 전부터 미츠코씨에게 로스팅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스스로 로스팅을 하면서 무네오씨의 커피철학을 이어 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커피 맛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날 눈에 띄는 것은, 미츠코의 곁을 보조하는 아리따운 여성이 있었는데, 나는 사모님과 모습이 너무 닮아서 따님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며느리라고 했고, 이름은 모리미투 마이였다. 환한 웃음을 머금은 마이의 편안한 모습이 미츠코씨의 곁에서 무네오씨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두 여성으로 세대교체가 된 카페비미는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소리 없이 모리미투 모네오씨의 자리를 메꾸는 그들의 모습에서, 일본의 장인들이 가업을 어떻게 몇 백 년씩 이어가는지 그 일면을 보는 것 같았다.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드리고 빠르게 적응하는 카페비미는 바로 무네오씨가 창업을 하면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오뚝이 달마의 모습이었다. 그 동안 모리미투 무네오씨가 이룩해 놓은 40년간의 명성과 그의 커피철학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음대로 이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삶과 가치관이 소박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모법답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에필로그

나는 인간에게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떤 선택은 자유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미츠코씨의 며느리, 마이의 결정은 어떤 선택이 될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운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카페비미를 나오기 전에 그의 이름을 노트에 받으면서, 미츠코씨와 며느리 마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함께 있는 모습으로 사진 찍기를 원했다. 그 때, 그들은 슬픔을 뒤로하고 환하게 웃어 주어서 보기 좋았다. 그날, 나는 카페비미를 방문하기 전에 가졌던 염려가 모두 기우(杞憂)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일본을 오래 다녔어도 아직까지, 일본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모리미투 무네오씨가 없는 카페비미는 후쿠오카의 아카사카 느티나무 길에서 변함없이 ‘카페비미의 시즌 2’라는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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