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그 이상의 ‘에이징 커피’ 세상에 그 맛을 알리다
10년 그 이상의 ‘에이징 커피’ 세상에 그 맛을 알리다
  • 황인옥
  • 승인 2017.11.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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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커피이야기
(30)카페, 란브르와 ‘세키구치 이치로’의 이야기 (3편)
- 란브르 에이징 커피의 비밀 -
란브르 첫 방문 날 메뉴 앞의 ★ 표시
‘에이징 커피’라는 개념을 알게된 때
이후 관련 자료 하나 둘 모으기 시작
이치로 씨의 커피 구입 에피소드 확인
그는 한 평생 커피 공부를 하며 살아
남이 생각지 못한 에이징 커피 만들어
필자 찾아오는 지망생들에게 하는 말
세키구치이치로
세키구치 이치로 씨.

#카페 란브르의 메뉴판

오늘은 역마살이 돋아서 미친놈마냥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이름난 커피집을 찾아다니던 시절, 긴자의 뒷골목에서 만난 커피 이야기다. 아마 그날이 란브르의 첫 방문이었다. 낯설었지만 용기를 내서 바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A4용지에 코팅된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에는 암호처럼 ★표가 표시된 메뉴가 즐비했다.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당황하는 기색을 눈치 챈 종업원이 메뉴의 내용을 설명했지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종류의 커피가 나열돼 있었고, ★표를 한 에이징 커피(Aging Coffee)까지. 정신을 가다듬고 에이징 커피에 대한 궁금증도 풀 겸해서 가장 오래 된 70년도 콜롬비아 커피를 주문했다. 그날의 에이징 커피 맛은 기대했던 것에 비해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난생처음 에이징 커피라는 개념을 알게 된 여행이었고, 새로운 커피공부에 대한 소재거리를 찾았다는 설렘까지, 나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란브르의 첫 방문이 있은 후, 도쿄에 갈 때마다 란브르 메뉴에 적힌 커피를 순차적으로 마셔보았다. 그러면서 시간을 가지고 에이징 커피에 대한 자료를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 커피의 주인공인 세키구치 이치로의 기록까지. 지금 이글을 쓰기위해 그 때에 모아 놓은 자료를 펼쳐보니 십 수 년 전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젠 자료도 정리할 겸, 독자들에게 에이징 커피에 대한 해묵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카페란브르
카페 란브르 입구.

먼저, 에이징 커피 시작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일본의 스미다 물산(住田物産)이라는 커피 제조와 생두를 수입하는 무역업체에서 시작되는데, 자료를 보면 스미다 물산이 1918년 고베에 스미다 상회를 설립하고, 1922년 도쿄에 출장소를 개설해서 커피도매를 시작했다. 커피를 연구하는 세키구치 이치로는 태평양전쟁 이전부터 도쿄에 출장소를 내고 커피생두를 판매한 스미다 물산과 거래를 하면서 한다(半田) 사장과 친해졌다. 그런데 1952년 스미다 물산이 오사카에 있는 본점을 도쿄 긴자로 옮기면서, 세키구치 이치로는 틈만 나면 란브르 근처에 있는 스미다 물산 사장실에 자주 놀러갔었다. 그날도 스미다 물산 사장실에 갔었는데, 방 선반위에 각국에서 온 커피견본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오래되었는지 포대의 색이 많이 변해있었다. 그는 한다 사장으로부터 그 견본커피를 얻어와 샘플로스터로 로스팅을 해서 맛을 보았는데, 뉴 크롭(New Crop)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독특한 맛을 느꼈다. 그는 오래된 커피콩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커피콩이 담긴 종이포대가 기존의 예멘 마티리 생두의 자루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이 포대를 사용해서 에이징을 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예멘 마타리 생두를 기존의 마대자루에 담아서 10년 정도 묵혀두고 맛을 보았는데 맛이 엉망이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후, 예멘 마타리를 종이포대에 넣고 20년을 묵히자 그의 예상대로 독특한 맛의 커피가 만들어졌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에이징 커피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해 갔다.

란브르메뉴판의에이징커피메뉴
란브르 메뉴판의 에이징커피 메뉴.

두 번째는 그가 긴자에서 란브르를 개점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 시기의 일본은 물자가 귀해서 커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물자도 뒷거래로 이루어지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하루는 낯익은 상인이 커피생두를 가져왔다. 생두의 품종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린 같았는데 오래된 것이었다. 그래도 생두의 상태가 비교적 좋아 보여 얼른 샘플로스터로 로스팅을 해서 맛을 테스트하면서 그는 놀라고 말았다. 전쟁 전에 그가 마셔본 커피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커피가 만델린 커피였다. 뉘앙스는 조금 달랐지만 그 때의 커피 맛이 느껴졌다. 그는 무리를 해서 보존 상태가 좋은 만델린 커피생두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전후(戰後)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군마커피사건이다. 종전(終戰) 당시에 군마현(群馬縣) 마에바시(前橋市)에 군(軍) 소유의 브라질 산 커피원두가 약 93톤이 보관되고 있었다. 이것을 부흥자금 충당목적으로 지사(知事)는 소화20년(1946년) 7월부터 년 말까지 군마현 이외의 33인에게 불하(拂下)했다. 문제가 된 것은 불하를 지시한 지사가 매수인으로 부터 소금, 작업화, 자동차등을 제공받았고, 커피공정가격이외에 신인금(信認金)으로 t당 25만 엔을 더 받았다. 그리고 그해 9월 군마현에 수해가 났을 때에는 신인금 외에 기부금 명목으로 28만~30만 엔을 매수인으로 부터 더 받은 일이 소화21년 2월 군마현 일제단속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에이징된생두
에이징 된 생두.

그러면, 세키구치 이치로가 오래된 만델린 커피를 상인에게 구입한 것과 군마커피사건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세키구치 이치로는 자신이 횡재한 듯이 구입한 만델린 커피의 출처가 궁금했지만, 구입당시는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이라는 것 이외는 알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는 자신이 구입한 만델린 커피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 만델린 커피의 전 주인은 독일군이었다.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인도네시아 커피를 본국으로 보냈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영국이 지배하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없어서 남아프리카 희망봉으로 돌아 가야했다. 이때에 이용하던 배가 해군 군함이었는데, 이용할 배가 없을 때는 잠수함을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수고를 덜기위해 독일은 일본과 삼국동맹조약(1940년 8월27일)이후 아이디어를 냈다. 본국으로 보낼 커피를 일본 군마현 마에바시에 보관했다가 독일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나서 시베리아 철도로 수송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소전쟁(1941년)이 시작되자, 이 방법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에 들어 온 독일 소유의 커피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군마현 마에바시의 칸켄(乾繭)창고에 보관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창고에서 잠들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패전국 독일군은 그 커피에 대한 소유권을 잃게 되었는데, 전후(戰後) 임자가 없는 만델린 커피도 ‘군마커피사건’처럼 부패한 관리들과 정치인들의 먹잇감이 되어 어둠의 유통과정을 통해 커피업체로 흘러들어갔다. 바로 이 때, 이 커피를 맛본 세키구치 이치로는 그 진가를 알아보고 대량구매를 한 것이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가치논쟁에 휩싸여도, 커피는 곡물이기에 신선한 햇콩이 선택을 받았다. 그해에 생산된 햇콩 상태의 생두를 뉴 크롭(New Crop), 1년이 지난 생두를 패스트 크롭(Past Crop), 2년을 넘기면 올드 크롭(Old Crop)으로 구분하는데, 세키구치 이치로는 이런 상황에서 올드 크롭보다 더 오래 된 10년 이상이 넘는 커피를 에이징 커피라고 들고 나와 세상에 그 커피 맛을 알렸다. 처음에 커피업계에서는 반신반의 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커피를 마셔보고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필로그

플라톤과 그리스 철학자들이 생각에 대해 논할 때, 나이는 노는 역할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철학에서 나이든 사람이 현명하다고 여겨 질 때는 그들의 나이 때문이 아니라 공부와 생각을 하기 위해 긴 인생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해로 만 102세를 넘긴 세키구치 이치로, 그는 한평생을 커피공부와 커피생각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는 일찍부터 남이 생각하지 못한 에이징 커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인데, 나는 철학자가 아니라서 그가 현명한 삶을 살았다고 판단할 능력은 없지만, 그는 커피쟁이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요즘, 필자에게 커피를 배우고 싶어 하는 지망생들이 가끔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젊은 청춘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정직한 커피는 돈을 못 버는 데, 평생 공부만 하는 커피쟁이로, 커피생각만하면서 살 수 있겠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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