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눈·하얀 피부…순박한 소녀의 자태로 봄을 알리네
청아한 눈·하얀 피부…순박한 소녀의 자태로 봄을 알리네
  • 윤주민
  • 승인 2018.03.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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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남산제비꽃
봄에 산·들서 가장 흔히 보는 꽃
오랑캐꽃·씨름꽃 등 별명 여러개
흰색·노랑·보라 등 색깔도 다양
600여종 중 우리나라 60여종 분포
제비꽃 노래한 시·가요도 많아
꽃말 ‘순진무구한 사랑·소박·성실’
산중턱 등 비탈진 사면에 주로 분포
구조물 틈새·돌담서도 잘 자라
그리스어로 ‘이온’ 신화에서 따와
남산제비꽃(천성산)
남산제비꽃(청계사)
남산제비꽃

#제비와 함께 찾아오는 꽃

봄이 되면 산과 들 그리고 길섶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제비꽃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피는 꽃이라 해서 제비꽃, 언 땅이 녹으면 춘궁기에 북녘에서 오랑캐무리가 쳐내려올 때쯤 핀다고 해서 오랑캐꽃이라고도 부른다. 그 외에도 키가 작다고 앉은뱅이꽃, 씨름을 하는듯한 꽃이라 씨름꽃, 장수꽃이라는 별명도 붙는다. 제비꽃 하면 보라색으로 피는 제비꽃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제비꽃은 꽃의 색깔도 다양하다. 흰제비꽃, 잔털제비꽃과 같은 흰색 계열, 장백제비꽃, 노랑제비꽃과 같은 노란색 계열, 긴털제비꽃, 둥근털제비꽃과 같은 분홍색 계열, 알록제비꽃, 왜제비꽃과 같은 홍자색 계열 등이 있으며, 여러 색이 섞인 것도 있다. 제비꽃은 전 세계적으로 600여종이 보고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만 60여종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둥근털제비꽃이 가장 먼저 피는데, 이를 필두로 뫼제비꽃과 남산제비꽃→잔털제비꽃→민둥뫼제비꽃→고깔제비꽃→긴털제비꽃→노랑제비꽃→졸방제비꽃의 순으로 3월에서 5월에 걸쳐 핀다. 제비꽃은 산과 들에 자라는데, 특히 산지에서 잘 자라고 양지나 반음지의 물빠짐이 좋은 흙에서 자란다. 특히 보라색 제비꽃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아주 친숙한 봄꽃이다. 그래서 제비꽃을 노래한 시와 가요도 많다.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 포기를 피워 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 두고 가거든//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을 몰라도 누구에게나 봄은 오고 봄은 간다. 하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에게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 봄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제비꽃의 전설

아르고스 강의 신 이나코스(Inachus)에게 이오(Io)라는 딸이 있었다. 이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섬기는 요정(Nymph)이 되었다. 제우스는 이오(Io)를 보자마자 그녀의 미모에 반해 이오를 기필코 자신의 애인으로 삼았다. 그의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구름을 일으켜 놓고 그 속에서 밀회를 즐기곤 했다. 헤라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눈치 챈 헤라가 구름을 헤치고 나타나자 당황한 제우스는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켜 놓았다. 그러자 헤라는 한술 더 떠 암소를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암소의 모습을 한 이오를 건네주었다.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는 헤라는 암소를 코카서스에 있는 올리브 나무에 매어 두고는 주야로 잠을 자지 않는 괴물 아르고스(Argos, 100개의 눈을 가진 괴물)에게 지키도록 하였다. 제우스는 이오를 불쌍히 여겨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에게 아르고스를 처치하고 이오를 구출할 것을 지시했다. 제우스의 지시를 받은 헤르메스는 피리를 불어 아르고스를 잠들 게 한 다음 목을 잘랐다. 아르고스가 죽자 이오는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헤라 또한 복수의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쇠파리를 보내 암소로 변한 이오를 물어뜯게 해 괴롭혔던 것이다. 쇠파리에 시달린 이오는 이를 피해 나일강까지 도망을 갔다. 이것을 보다 못한 제우스는 앞으로 절대 이오를 쳐다보지 않겠노라고 헤라에게 약속하고 이오를 인간의 모습으로 바꾼다. 헤라와 제우스에게서 자유로워진 이오는 그 후 이집트 여왕이 되었으며 많은 이집트 왕을 낳았다고 한다.

제우스는 자신의 여인을 암소로 둔갑시켰을 때 하찮은 풀을 뜯어먹는 그녀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녀의 청아한 눈과 하얀 피부를 닮은 아름다운 꽃을 피어나게 했다. 그리고 이오가 그 꽃을 뜯어먹도록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하얀 제비꽃이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제비꽃을 뜻하는 이온(ion)은 ‘이오(Io)의 꽃’이란 뜻이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서양에서는 제비꽃을 ‘이오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라틴어로 되면서 비올라(viola)가 되었고 개량종이 나오면서 바이올렛(violet)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색상을 말할 때 바이올렛 하면 제비꽃의 가장 일반적인 색상인 보라색을 의미한다.

태백제비꽃(청태산)
태백제비꽃
태백제비꽃(태백산)

#남산제비꽃

남산제비꽃은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제비꽃의 이름은 꽃의 외형적 특성이나 꽃잎의 모양새로 구분하여 명명되기도 하지만, 대개 잎의 생김새에 의해 구분한다. 또한 종명은 금강제비꽃, 태백제비꽃, 우산제비꽃처럼 최초로 발견된 지명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남산제비꽃은 제비꽃과(violaceae) 제비꽃속(violet)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Viola albida var. chaerophylloides (Regel) F.Maek. ex Hara이다. 여기서 종소명 알비다(albida)는 흰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태백제비꽃 등에도 공통적으로 붙으며, 차에로필로이데스(chaerophylloides)는 손바닥(cheiro) 모양이라는 잎의 특징을 나타낸다. 태백제비꽃(Viola albida Palib)과 유사한 흰색 꽃이 피며 꽃잎 안쪽에 자줏빛 줄무늬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아주 드물게 자주색의 꽃이 관찰되기도 한다. 4~5월에 산지의 비탈과 같은 나무 아래에 수분이 잘 빠지는 곳을 좋아한다. 꽃이 지고나면 열매는 7~8월에 맺히는데 열매껍질 속에 수십 개의 씨앗이 생긴다. 이것이 영글면 열매껍질이 세 갈레로 터져서 튕겨나간다. 서식지로는 한반도와 일본 등 동아시아에 걸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산중턱 정도의 비탈진 사면에 주로 서식한다. 중부 이북에 많으나 전국의 산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꽃이다. 꽃말은 ‘순진무구한 사랑’, ‘소박함’, ‘성실’, ‘품위 있는 가인’, ‘신뢰’, ‘나를 생각해 주세요’ 등이다. 산길을 가다보면 길섶에 나즈막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은 순박한 소녀의 자태와 같이 느껴진다. 잎은 코스모스의 잎처럼 잘게 갈라지며 유사종으로 태백제비꽃과 단풍제비꽃이 있다.

#개미와 공생하는 제비꽃

제비꽃은 평지에도 잘 자라지만 높은 바위의 틈새, 돌담, 구조물의 틈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 비밀은 조력자 개미에게 있다. 제비꽃이 지고나면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가 영글면 씨앗을 분산시킨다. 튕겨나간 씨앗은 개미가 물고 간다. 개미는 체구가 작아 좁은 틈새에도 집을 짓는다. 실은 작은 제비꽃의 씨앗에는 하얀 젤리 같은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는 물질이 부착되어 있는데 여기에 개미가 좋아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제비꽃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해 개미가 좋아하는 양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미는 씨앗을 통째로 먹지는 못한다. 개미집으로 운반한 씨앗 중에서 엘라이오솜만을 먹고 남은 씨앗은 개미집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면 그 씨에서 싹이 터 제비꽃이 자라게 된다. 이것은 종을 퍼뜨리기 위한 제비꽃의 생존전략이다. 제비꽃에는 또 하나 비밀스런 생존전략이 있다. 일반적으로 곤충 등을 매개로 암술이 수술에게서 수분(受粉)을 하여 열매를 맺는다. 봄철에는 제비꽃도 그렇게 열매를 맺는다. 이 경우를 ‘개방화(開放花)’라 하는데, 제비꽃은 가을철인 10월경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이때 피는 꽃은 꽃잎을 펼치지 않고도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하여 열매를 맺는다. 이 경우를 ‘폐쇄화(閉鎖花)’라고 하는데 간혹 가을철에 개방화를 함께 피우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제비꽃을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은 개미의 도움뿐만 아니라, 곤충이 많지 않은 계절에는 스스로 열매를 맺어 퍼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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