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위해 살아오던 父子의 진솔한 자아찾기
서로를 위해 살아오던 父子의 진솔한 자아찾기
  • 윤주민
  • 승인 2018.05.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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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가족 힐링 영화 ‘레슬러’
아들 위해 꿈을 포기한 아버지
아버지 위해 선수 길 걷는 아들
레슬링 통해 소통 벽 허물어
캐릭터별 개성·애환 녹여낸
잔잔한 웃음 속 가족愛 ‘뭉클’
억지스러운 러브라인 ‘난해’
2-1
영화 ‘레슬러’스틸 컷.

“모든 인생을 바쳐 헌신했더니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게 부모야. 네 인생 좀 살아!”

지난 9일 개봉한 김대웅 감독의 영화 ‘레슬러’에서 귀보(유해진)의 어머니 나문희가 한 말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처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대사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편 깊숙이 비수가 꽂히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고 명확하다. 부모가 되지 않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린 늘 부모의 속을 썩였다.

전직 국가대표 레슬러였던 귀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사력을 다한 귀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들에게 집착한다. 귀보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아들, 성웅(김민재)이기에 그 역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지만 사실은 힘에 부친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윗집 이웃이자 소꿉친구인 가영(이성경)이 뜬금없는 충격 고백을 해버린 것.

사건은 이렇다. 성웅과 가영은 서로에게 할 말이 있다며 데이트를 약속하고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성웅은 어린 시절 함께 자라온 가영이 언제부턴가 이성으로 보였고,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래서 반지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웬걸, 가영은 대뜸 성웅의 엄마가 되겠다고 선수를 쳐버린다.

가영의 말인즉슨, 어린 시절부터 귀보를 남몰래 짝사랑해왔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소개팅녀 다나(황우슬혜)의 밑도 끝도 없는 대시까지. 촉망받는 레슬링 선수로서 자신의 뒤를 이어주길 바랐던 성웅의 반항에 귀보의 일상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언뜻 보기에 이 작품은 ‘레슬링’이라는 스포츠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레슬링은 하나의 장치일뿐, 일상적인 소시민의 삶을 그리며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전한다.

귀보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이혼남, 성소수자 등을 스크린에 등장시켜 이들 삶을 조금이나마 들려준다. 레슬링이라는 소재의 특수성을 옅게 하는 대신 귀보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특히 ‘부성애’라는 진부한 설정 속에서도 이제는 부모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

김대웅 감독은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는 부모들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는 까칠한 귀보의 모습을 통해 모순된 사랑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귀보는 엄마에게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하소연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의 무게는 묵직하다. “넌 20년 키웠지? 난 40년 키웠어”라고.

가족애를 다룬 영화의 전형적인 절차를 밟고 있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코미디와 잘 버무려진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메운다. 가볍게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가영이 귀보를 짝사랑한다는 무리한 설정. 지나친 과욕일 수 있다.

문제는 이 무리수에 어처구니없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꼬마가 친구의 아빠에게 사랑을 느꼈고, 스무살이 될 때까지 그 감정을 간직했다는 것은 관객을 설득시키기에 역부족인 듯 하다.

설령 된다고 해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그 흔한 설명조차 없다. 단순히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었다고 말하는 가영의 주장을 받아들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가치관에 따른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영화를 납득하기엔 하나의 결점이 너무 크다. 결국 관객들의 성향에 자유롭지 못한 영화로 스크린이 어두워진다.

윤주민기자 yj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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