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서예서 추상서예로
추상서예서 추상미술로…
40여년 작품활동 ‘한눈에’
시작은 전통서예의 기본을 철저하게 파고드는 것에서 출발했다. 모든 물질이 원자에서부터 출발하듯 그 또한 서예의 원자를 전통서예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변화를 모색한 시기는 15년 전. 문득 한일자가 그의 붓을 흔들었고, 그때부터 전통서예에 대한 해체가 시작됐다.
첫 변화의 핵심은 문자의 형상을 벗어던지고 획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추상서예로의 진입이다. 특히 한일자에 대한 탐구에 집착했다. “붓의 밀도를 강화하면서 흑에서 백의 세계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심상은 추상으로, 존재는 의미로 바뀌고 있었다. 전통서예가 ‘존재 속의 심상’이었다면 추상서예는 ‘의미 속의 추상’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몇 번의 전시를 지나면서 획은 점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한다. 획이 점으로 더 쪼개진 것이다. 작가는 “문자의 근원이자 기본으로 점과 획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 시기를 서예를 깨트린다는 의미로 ‘파서(破書)의 시기’로 구분 지었다. 이때부터 그는 ‘한일자’ 서예가로 불려졌다.
두 번째 변화는 ‘적서(積書)’의 시기다. 이른바 추상예술의 시작인 것이다. 문자의 근원으로 쪼개놓은 점을 한 화면에 집적시키는 방식이다. 작가는 이를 “전체에서 부속으로 분리했다가 그 부속이 다시 전체로 되는 과정”이라며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작가는 최근 근원탐구에서 벗어나 다양한 변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동양의 오행사상이 바탕이 된 오방색으로 한지 위에 한글 문장을 20여 번을 중첩해서 쓰는 변용을 구사하고 있다.
중첩된 글자들은 세로획만 남기고 덧칠로 지워진다. 의미 있는 문장들을 수없이 중첩해 썼지만, 가로 획은 먹으로 지우고 세로획만 살려놓았기 때문에 작품 속에는 의미는 사라지고 조형성만 남게 된다. 추상서예에서 추상미술로의 서예의 또 한 번의 확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현재 작가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전통서예로 돌아와 있다. 한일자가 작가의 열정을 다시 붙잡고 있는 것. 그는 자신의 예술적 회귀를 ‘순환’으로 규정했다. 물이 증발해 다시 땅으로 떨어져 끝없이 아래로 흘러가듯 자신의 예술세계 또한 물의 그것처럼 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회귀에 대한 변이다.
노상동의 철학적 몰입을 확인하는 31번째 개인전이 봉산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27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서예부터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예술적 변천사를 한 눈에 만날 수 있다. (053) 661-3500
황인옥기자